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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100-33] 한국화가 김현정 "21세기 풍속도로 세상과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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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서른 세 번째 주인공은 연작 내숭으로 21세기형 풍속도를 그려내는, 세상과 소통하는 트렌드 팝 아티스트, 한국화가 김현정입니다.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이한나 기자] 이토록 트렌디한 한국화라니!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순간을 만끽하는 방법이며, 세상을 잘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그림은 세상을 담는다. 사람, 동물, 식물, 풍경, 그 그림을 보면 그 시대상이 보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풍속이 보인다. 각 시대별로 시대상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들은 어김없이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최근 21세기형 대한민국 풍속도라고 불리울 만한 그림을 그리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한국화가가 있다. 바로 김현정. 그는 2016년 1월,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최연소 한국인으로 단독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지난 4월 13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가히 한국화가계의 아이돌, 스타라고 불릴만 하다. 우리나라 뿐만 세계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셈.

내숭을 주제로 그려내는 그녀의 그림은 솔직, 담백하면서도 발칙한 매력이 돋보인다. 한복을 입은 여인이 등장하는 내숭 시리즈는 마치 일상 속 내 모습 같은 찰나의 순간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그녀는 최근 SNS를 활용한 소셜드로잉이라는 장르로 기존에 떠올렸던 정적이고 단조로웠던 한국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화가 김현정이 내숭이라는 단어로 그려내는 세상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하 일문일답)

-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다면요?

▶ 내숭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국화가 김현정입니다. 사실 한국화만 그리지는 않고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고루 다루고 있어요. 조형물 제작도 하고 영상물 제작도 하고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로는 팝 아티스트가 더 맞을 것 같아요. 내숭 시리즈에는 주로 한복을 입은 여인이 등장해요. 한복을 입은 여인이 아이폰을 들고 있다거나, 로또를 한다든지, 스쿠터를 타는 모습 등을 담고 있어요. '21세기 풍속도다' 라고도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일기 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자화상이라고 할까요(웃음).

- 21세기형 풍속도라면 매번 주제를 정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잘 담아내는 주제여야 하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주제를 정할 때 지금을 보는 게 아니라 10년 뒤, 30년 뒤에 이 그림을 볼 때 '아 맞다! 10년 전에 그랬었지' 하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으로 이 시대의 트렌드를 담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예전에 작업할 때만 해도 그 시대에 가장 핫 한걸 담아내야지 했거든요. 그래서 아이폰4를 그려넣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더 좋은 아이폰들이 나왔잖아요. 그런 것만으로도 시대성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한 때 허니버터칩 열풍이 일었을 때에는 허니버터칩을 그리기도 했어요.

삼포세대 같이 요즘 시대들을 표현하는 것들을 이미지로 담아보려고 하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제가 어릴 때 해외를 많이 갔었는데 특히 현지의 미술관, 박물관을 많이 찾았어요. 가서 작품들을 보면 분명 비디오나 사진이 존재했던 시기였는데도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그 시대를 판단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림이라는게 어떻게 보면 타임머신 같은 역할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 나라나 시대의 문화를 보여주기도 하니 마치 '통역사 없이 나라 간 통역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다양한 시대를 담아서 그림에 표현하는 걸 옛날부터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저도 여느 20-30대 여자들과 비슷하게 1년 365일 다이어트를 계속 고민하거든요. 먹으면서 죄책감 엄청 들어요. 그래서 '매일같이 내일 다이어트 해야지' 하는 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요. 아니면 떡볶이를 좋아해서 예전에 강남역에 있었던 길가 떡볶이를 담아보기도 해요. 지금 벌써 강남역 포장마차들은 다 없어졌잖아요. 게다가 가격도 한 10년 뒤에는 바뀔거고요. 그러면 나중에 '이야~ 떡볶이가 3,000원 밖에 안해?' 이럴 때도 있을 것 같아서 이런 것도 그림에 다 사실적으로 표현해요.

- 그림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고 들었어요. 한국화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궁금해요.

▶ '언제 그림을 시작했다'라고 하기가 좀 어려워요. 왜 어릴 때 우리는 글을 떼기도 전부터 그림을 그렸잖아요. 벽에도 그리고 이불에도 그리고 (웃음). 그 때는 누구나 화가라고 불리는 시기 일텐데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저는 너무 좋았어요. 그러면서 화가를 꿈꾸게 됐고요. 8세 때부터 전문 화실을 다니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제게 예술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러다 대학 전공을 정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러 가지 과목을 선택해서 들어봤을 때 동양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당시 서양화만 거의 10년을 해 온 상태여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먹이나 벼루 등 다 새로운 것 투성이였어요.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나는 한국인인데 왜 먹을 처음 잡아보지?' 싶기도 하고 또 선생님이 따라 그려보라고 주셨던 채본도 너무 예뻐서 빨리 잘 따라 그리고 싶어지고요. 어릴 때부터 악바리 같은 기질과 경쟁심이 강했던 탓인지 이왕이면 저도 '세계 으뜸의 우리나라 그림을 그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화를 선택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결정을 할 때 쯤, 마침 제가 서양인이 그린 수묵 개 그림을 봤어요. 독일여자가 먹으로 강아지를 그린 거 예요. 진짜 잘 그렸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한국인인 나도 어려운데 외국인이 정말 애썼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아 내가 유화를 정말 잘 그린다면 외국인도 나를 볼 때 '작은 동양인 여자가 애썼다' 라고 생각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 작품을 보고 '왜 이 사람이 개를 그렸지', '왜 한복을 그렸을까?' 이런 게 궁금해야 하는데 지금 제가 하는 작품을 유화로 그려내면 그 재료가 주는 상징이나 화법의 장막 때문에 오히려 제가 순수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은 가려질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나라 걸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 제가 봤던 다른 한국화가들의 전통적인 그림상을 보면 선이 간단하고 여백이 넘치는 그런 화풍을 띄는데 김현정 작가의 작품 같은 경우는 사진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림 속 재치있는 상황을 보면 가끔 '마치 한복을 입은 내 모습 같다?' 라는 느낌도 들고요.

저는 제 그림을 소개할 때 유화의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 극사실주의)을 한국화에 접목시켰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는 화법은 원래 한국에 있었던 화법이었어요. 한국화의 그림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뉘어 볼 수 있는데요. 많이들 한국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여백이 많고 되게 단순화된 선의 그림이 있고요. 그 정 반대로 마치 사진같이 극 사실주의로 묘사된 초상화 그림도 있어요.

한중일의 옛 그림들, 풍경화나 초상화를 비교해보면 한국 그림이 되게 표현방법이나 기술적으로 아쉬운 느낌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저도 의문이 들었던 게 한국은 예부터 손기술이 좋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왜 우리나라 그림 속 표현의 기술발전은 더뎠던 걸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공부를 계속 하면서 자세히 알아보니 그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한국 문화 말살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나라의 그런 훌륭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다 가져가고 훼손시켰던거죠.

그래서 그 결과, 지금 옛 그림들을 확인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법이나 기술발전의 역사가 뚝 끊긴 것처럼 보여요. 우리나라 고유의 화법은 그 뿌리를 찾을 수 없도록 하면서 근대화라는 명목 하에 새로운 방법들을 억지로 주입하고 교육한 결과예요. 옛날 사람들, 심지어 왕의 초상은 두 점 빼고 다 유실 됐대요. 그런 역사를 알게 되면서 더 열심히 작업하고 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림에 쓰이는 안료도 전부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으로만 그리고 있어요.

- 김현정 작가의 그림은 원색적인 색감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안료의 종류는 한정적인데 그것들을 잘 섞어서 쓰고 있고요. 명암을 넣거나 여러 번 덧칠 하면서 색을 만들어내요. '달려가마' 속 말처럼 저렇게 진한 색감으로 칠하려면 사실 서른 번을 칠해도 색이 잘 안 나오거든요. 보통 민화는 작품 하나당 한 10번 정도 채색 작업이 들어간다고 하면 저는 한 30-40번 정도 칠 작업을 더해요. 덧칠해서 더 쨍한 색감이 나오는 거 예요. 그래서 한 점 그리는 데 되게 오래 걸려요.

- 보통 작업 시장은 작품 하나당 얼마 정도 걸리나요?

▶그림 소재에 따라 다른데 하루도 안 쉬고 그렸을 때 평균 2달 - 6달 정도 걸려요. 저는 저 스스로 공무원, 회사원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거든요.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오후 7시-8시 사이에 마무리 하고 퇴근하는 스케줄이에요. 물론 야근 할 때도 있고요(웃음).

- 그림을 그릴 때 다양한 주제들이 있잖아요. 클라이밍도 그렇고 승마 등등이요. 다 직접 경험한 걸 그리는 건가요?

암벽등반하는 그림은 방송사 아리랑tv와 함께 콜라보 해서 만든 채널 아이디(프로그램 사이에 들어가는 짧은 영상)예요. 그림을 그리기 위햇 클라이밍도 배우긴 했는데 사실 잘하지는 못하고 영상에서는 잘하는 척을 한거죠. (웃음) 물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보고 그냥 그릴 수도 있겠죠. 제가 그냥 척하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직접 느낀 걸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클라이밍도 배웠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마치 인생 같았어요. 한 계단 한 계단 스텝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인생은 아무리 건너뛰고 싶다고 해도 그냥 점프하고 넘어갈 수 없잖아요. 하나하나 천천히 밟아 나가자는 마음으로 그렸어요.

- 그림을 보면 독특한 제목들이 많아요.

저와 관객, 그리고 그림 사이의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목을 짓고 싶어서 태아처럼 태명을 지어요. 한 작품을 시작하면 10-20개 정도의 이름을 고려해요. 그래서 별명처럼도 부르기도 하고. 태명을 짓기도 하고 본명과 태명이 같아질 때도 있고요. 이렇게 태명을 지어 부르면 작업기간동안 아무래도 더 애착이 생기고 그림이 소중하게 여겨져요.

-SNS 활동을 열심히 하시던데요. 소셜드로잉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만들었다고요.

▶사실 작가로서 대중들에게 그림을 365일 전시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그러다 'SNS가 나만의 온라인 갤러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열심히 SNS 활동을 시작했어요. 많은 분들이랑 SNS로 소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셜드로잉'이라는 형태로 확장이 되더라고요. SNS에 사람들이 더 좋은 해석을 달고 다음 구성을 얘기 해주시는 거예요. 사실 처음에는 그게 스트레스였어요. 내 영역인데 뭔가 간섭받는 느낌이랄까요. 처음에는 불편했죠.

그런데 나중에는 '왜 이걸 혼자 하려고 했을까.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참여하게 해보자'라고 해서 라디오처럼 사연을 받는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이벤트를 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참여를 유도하기도 해요. 마치 위키백과가 집단지성의 힘으로 세계 최고가 된 것처럼요. 집단지성을 활용한 그림을 그려보는 거죠. 단순히 SNS 활동을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저는 작품의 일환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물론 그렇게 탄생한 그림들이 그게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네티즌이 다 정했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은 없어요. 사실 너무 많은 의견이 달려서 너무 많은 의견이 달리거든요. 결국은 그 의견을 취합하고 선택하고 그려내는 건 제 몫이죠.

제가 한 때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대작(남을 대신하여 작품을 만듦)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것이었는데요.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그게 그렇게 큰 이슈는 아니에요. 왜냐면 큰 조형물들을 만들 때에는 혼자서 평생 해도 못 만들 그런 작업들도 많아서 이미 협업이 기본이 되어 있거든요. 그림은 당연히 제가 그리지만 전시를 하나 하려고 해도 액자 하시는 분이 따로 있고 또 기획을 해주시는 분을 따로 두기도 하고 해요. 그러면 제가 역으로 질문을 드리죠. 왜 화가는 혼자서만 해야 되느냐구요. 레스토랑에 가도 셰프가 혼자서만 요리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디렉터의 역할을 하는거죠. 요즘은 누가 디렉팅하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비단 한국 미술시장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해외에서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협업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최근 그림들에 새로운 변화들이 있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시리즈는 목욕탕이에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은 목욕탕에 잘 안 가지만 사실 대중목욕탕은 정말 한국의 독특한 문화중에 하나잖아요. 그걸 예쁘게 표현하고 싶어요. 저는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꼭 목욕탕에 데리고 가거든요. 그러면 그 친구들도 처음에는 신기하고 부끄러워하다가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왜 우리나라는 이런 고유의 문화들을 쉽게 버리려고 할까' 하는 마음에 더 애착을 가지고 그리기도 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그렸던 내숭녀는 다 혼자만 나오는 그림이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타인을 계속 집어넣고 있어요. 그리고 내숭녀에게 표정을 넣어주는 것, 풍속화랑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화법적으로는 그 두 가지를 새롭게 시도해보고 있어요. 꼭 그림만 그리지도 않고 다양한 형태의 작업물을 계속해서 내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워질 거예요. 지켜봐주세요! 사진 이정열 기자 dlwjdduf777@ , hale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