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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100-27] 콘셉트 디렉터&퍼포머 이윤정 "영원한 삐삐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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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스물일곱 번째 주인공은 삐삐밴드·EE·베르베르의 보컬이자 스타의 비주얼을 창조하는 콘셉트 디렉터 이윤정입니다.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최정윤 기자] 지난 1월 서현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 소녀시대 막내 서현의 홀로서기와 동시에 이슈가 됐던 것은 그의 과감했던 비주얼 변신이다. 청순한 소녀에서 매혹적인 여인으로 변신한 서현의 곁에는 콘셉트 디렉터 이윤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이 낯이 익다면 정답이다. 이윤정은 콘셉트 디렉터이기 이전, 90년대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삐삐밴드의 보컬이고 대한민국 일렉트로닉 장르의 문을 연 EE의 멤버다. 현도 무대 위에서 활발한 공연을 하고 있으며 EE의 또 다른 멤버이자 남편인 이현준과 함께 다양한 아트 퍼포먼스도 펼친다. 사실 그를 스타일리스트나 가수로 규정짓기는 힘들다. 그렇게 한정적인 직업명으로 대체하기에는 이윤정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는 스스로를 '가수보다는 퍼포머, 스타일리스트보다는 콘셉트 디렉터. 이것이 나와 맞는 수식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하 일문일답)

-직업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지만, 여전히 직함이나 직책들로 구분 지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 보니 혼동되는 부분도 생기겠어요.

▶토탈 아티스트 EE 이윤정(이하 이): 이제는 직업이 좀 더 세분화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직업과 또 그에 맞는 역할이 있는데, 일을 하다 보면 제가 그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사실 저는 영역 구분 없이 늘 다양한 일을 해왔던 사람인데 말이죠.

-어떻게 불렸으면 좋겠나요?

▶이: 전 그냥 언니?(웃음) 직업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전 그냥 제가 만든 것을 좋아하고, 또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에요.

-요즘에는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나요?(인터뷰는 3월 초 진행)

▶이: 서현 활동은 끝났고, 우진원·김은혜 디자이너의 로켓런치 2017-18 F/W 컬렉션 쇼 스타일링과 음악을 준비하고 있어요. 또 지금 세 개의 그룹에 속해 있는데, EE와 삐삐밴드 그리고 베리베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베리베리는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밴드에요. 지금 한창 녹음 중에 있고요. 그리고 엄마를 하고 있어요. 뭘 많이 하고 있네요.

-삐삐밴드의 이윤정의 스타일링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건가요?

▶이: 2000년도부터 스타일링을 했어요. 처음에는 지금 YG 대표 양현석의 제의로 시작됐죠. 그가 "너 항상 입고 다니는 것처럼 비슷하게 입혀줄래?"라며 지금 와이프 이은주가 속해 있던 걸그룹 스위티의 스타일링을 부탁하더라고요. 멤버 셋 다 너무 귀여웠어요. 제 옷 가져다가 와서 입히고, 생각이 나는 데로 디자인해보고 하다 보니 패션을 음악에 녹일 수도 있고 더라고요. 돈과는 상관없이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

-최근 서현과의 만남은 정말 파격적인데요.

▶이: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아무래도 부담감은 좀 있었어요. 제가 음악을 하다 보니까 장르에 대한 고민도 없진 않았고요. 그런데 서현이 저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논문인 줄 알았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 입고 싶은 옷, 콘셉트, 비주얼까지 모든 것을 담아서 보냈는데, 그때 마음이 좀 뭐랄까. 짠하더라고요. 끝나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드네요.

예쁜 언니들 사이에서 10년을 막내로 있었잖아요. '서주연이 혼자 무대에 섰을 때 누구보다 반짝이게 만들고 싶다', '디바로 만들어주고 싶다'라고 욕심이 막 생겨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 마음이 통한 것 같아요. 서현의 변신은 누구보다도 멋졌어요.

▶이: 서현이 워낙 밝고 샤방샤방한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라서요. 저 특유의 펑키한 감성을 너무 강요하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겠다 생각돼서, 그 두 가지를 절충하는 작업이 필요하긴 했어요. 섹시한 콘셉트의 의상이지만 고급스러움이 묻어나고, 착하면서도 디바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가슴골 위치부터 스커트 길이까지 작은 디테일까지 고민을 많이 했죠. 인형놀이하듯이 정말 재밌게 했어요. 제 스타일이 기존에 나와있는 의상을 협찬받기 보다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편이거든요.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구해 저희 팀원들과 함께 밤새 옷에 붙였죠. 서현 활동 3개월 동안 제가 3년은 늙은것 같네요.(웃음) 힘들기도 했지만 무대 위에서 빛나는 서현을 보니 소녀에서 숙녀로 홀로서기를 예쁘게 잘 한 것 같아 내심 기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서현이 너무나도 소화를 잘해줘서 고마워요. 과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어 어색할 수도 있는데 그녀의 열정으로 잘 풀어내더라고요.

-연예인 출신이 다른 연예인의 스타일링을 돕는다는 것에 대한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편견도 없지 않죠. 삐삐밴드 시절부터 저를 알아왔던 분들에겐 반항아, 어쩌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금은 있을 수도 있고요 워낙 어릴 때부터 가수를 했고 이름을 알리게 됐으니까. 쉽게 일을 하고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 눈초리랄까. 굉장히 핍박받으면서 살아왔거든요. 겉보기엔 책임감도 없을 것 같지만 저 사실 굉장히 노동자 스타일이에요. 한번 일을 같이 했던 분들은 계속해서 함께하고 있고, 그만큼 맡겨주면 열심히 합니다. 앞으로도 이것저것 열심히 할 거고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95년 삐삐밴드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도 궁금해요.

▶이: 원래 발레를 전공했어요. 원래는 서현 같은 이미지였죠.(웃음) 그런데 허리를 다친 거예요. 수능 보기 6개월 전에 말이에요. 무용을 전공으로 대학을 가는 게 불가능해서 연영과로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사실 면접 당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당연히 입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머리도 뽀글뽀글 파마하고 수능 후의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불합격 통보가 전해진 날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화가 나신 아버지가 제 머리를 잡고 싹둑 잘라버렸어요. 황비홍처럼요. 그때 정신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던 것 같아요. 그대로 집을 나와서 삭발을 했죠.

삭발을 하고 디제잉을 했어요.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오픈한 바였는데, 그때 해외 음반들을 많이 접했었죠. 일렉트로닉, 프로디지(The Prodigy)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음악 같은 새로운 장르를요. 지금 말로 굉장히 힙한 곳이었죠. 그런데 웬 삭발을 한 이상한 여자애가 디제잉을 하고 있으니, 소문을 듣고 매니지먼트 쪽에서 많이 찾아오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에 지금 삐삐밴드 오빠들이 와서 말괄량이 삐삐 같은 애를 찾고 있는데 노래할 수 있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그렇게 지금의 삐삐밴드가 만들어진 거예요.

-당시 반항적인 비주얼과 음악으로 큰 화제가 됐었어요.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새롭게 준비하는 베르베르 밴드도 소개해주세요.

▶이: 삐삐밴드 활동을 하다가 뉴욕에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일렉트로닉 장르를 더욱 심도 있게 접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혼자 일렉트로닉 솔로 음반을 냈죠. 그 후로 계속 일렉으로 활동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서 EE 작업 활동을 했어요. 베르베르도 일렉트로닉 장르를 선보이는데요. 두 명의 드러머와 베이시스트 그리고 컴포징 하는 친구로 구성된 밴드입니다. 요즘 DJ라 하면 편곡된 디제잉을 하잖아요. 베르베르는 직접 연주를 하면서 편곡을 전부 라이브로 하는 거예요.

-공연이 정말 궁금하네요.

▶이: 장르가 너무 마이너라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퍼포먼스팀 EE는 어떤 작업들을 하나요.

▶이: 미취학 아동들과 부모들을 위한 심미적 교육 프로젝트(Esthetic Education)도 마찬가지고 음악을 동반한 미술 콘텐츠가 중심이에요. 영상 쪽으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요. 작업마다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겠지만, EE가 말하는 데는 긍정도 부정도 존재하지 않아요. 어떠한 현상을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동시에 비판적인 시선도 함께하죠. 아티스트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결과물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갑니다.

-설치미술가이자 아티스트, 프로듀서 이현준과는 매 삶이 예술적일 것 같은데요.

▶이: 삶이 고달프죠.(웃음) 부부가 모두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과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아이가 생기면서 한가지 약속한 것은 있어요. 7시 30분까지는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는 무조건 일을 하지 않는 걸로요. 그러다 보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짧은 시간 안에 미친 듯이 바쁘게 일을 하는게 일상이 됐네요. 아이가 너무 보고 싶지만 둘 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가 돼서 펑크 하고 있으면 이상할 것 같지 않나요?

-지난 3월 찍은 가족 화보를 봤어요.

▶이: 화보를 찍어준 포토그래퍼 강인기와 전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EE 작업도 함께 하고 있고 아들 백일 사진도 찍어주셨고요. 언제 한번 가족사진을 찍자고 말이 나왔는데 바빠서 계속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찰나 한 매거진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로 화보를 기획하는 걸 권하기에 좋다고 했죠. 화보 속 배경이 실제 제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그 주변이에요. 스타일링도 직접 했고요. 편하고 자유롭게 진행된 촬영이었죠. 70년대 지어진 옛날 집이라 그런지 분위기 자체가 좀 옛 것 같은 느낌이 들죠? 화보 콘셉트도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각각 모티브로 잡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담고자 했어요.

-정말 행복해 보여요. 엄마로써 이윤정은 어떤 사람이죠?

▶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하는, 특히나 나는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 남편도 마찬가지고, 그동안 본인밖에 몰랐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우리 아이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경험하게 될 텐데'란 생각이 드니 더 애착이 생기죠.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아들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봐요.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기분이 나쁘겠다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안돼', '못해'라는 말이 줄어들더라고요. 대신 규율, 규칙은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들은 어떤 행복을 얻었으면 좋겠나요.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무엇이든지 상관없어요. 뿌듯함과 동시에 그것으로 하여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요.

dondante14@sportschosun.com 사진=이새 기자 06sejong@, SM엔터테인먼트, 아레나 옴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