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A: "에피 역 배우 정말 잘 하지 않아?"
관객 B: "와…, 정말 대단하더라."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드림걸즈'를 보고 나오는데 여기저기서 이런 대화가 자주 들렸다. 극중 에피 역을 맡은 브리 잭슨(Bre Jackson) 칭찬이다. 관객들의 이런 즉각적 반응이야말로 주절주절한 리뷰보다 훨씬 진실되고, 살아있는 품평이다.
배우의 에너지가 대단하면 흔히 '파워풀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브리 잭슨은 뭐랄까, 약간 '오버'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놀라운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기립박수가 여전히 어색한 한국 관객들을 커튼콜 때 모두 일으켜세웠으니 말이다.
특히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부르는 '가지 않을거야(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는 압권이다. 무대를 천천히 걸으며 절절한 감정을 담아 5분 가까이 불러야하는 긴 솔로곡이다. 웬만한 에너지와 배짱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넘버를 노련하게 해내 '얌전히' 보던 관객들을 마침내 흥분시켰다.
'드림걸즈'는 스타를 꿈꾸는 세 흑인 소녀 에피, 디나, 로렐의 이야기다. 가창력이 뛰어난 에피는 원래 리더였으나 팀이 커지면서 날씬하고 예쁜 디나에게 '센터' 자리를 빼앗긴다. (디나는 빌 콘돈 감독의 2006년 영화에서 비욘세가 맡았던 역할이다.) 거기다 매니저겸 연인이었던 커티스마저도 디나에게 눈길을 준다. 에피는 커티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숨긴 채 결국 팀에서 쫓겨난다.
이 작품은 '엔들리스 러브'로 유명한 다이애너 로스가 속했던 그룹 슈프림즈의 실화가 모티브다. 냉혹한 쇼비즈니스 세계를 배경으로 스타를 꿈꾸는 세 여자의 애환을 R&B와 재즈, 디스코, 팝 발라드 등 60년대를 풍미한 '모타운(Motown) 사운드'에 담는다.
세 여인 모두 사연이 있으나 에피의 캐릭터가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욕망과 상실감, 질투,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한(恨)의 정서까지 담겨 있다. 배우 홍지민도 2009년 국내 초연 때 에피를 멋지게 연기해 그해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제작사는 개막에 앞서 '본토의 소울이 서울에 왔다'는 뜻의 '소울 투 서울(Soul to Seoul)'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는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디나 역의 캔디스 마리 우즈는 매력적이었고, 커티스 역의 섀비 브라운은 중후한 목소리로 성공에 눈이 먼 제작자를 연기했다. 감초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지미 역의 닉 알렉산더도 '귀여움'을 발산하며 큰 박수를 받고 있다. 앙상블까지 고른 실력을 갖춰 전통 브로드웨이 쇼뮤지컬의 맛이 살아난다.
6월 25일까지 샤롯데씨어터.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