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이 끝이 아니다.
기술위원회의 딜레마다. 유임과 경질 사이의 선택보다 더 큰 문제는 후임자다.
3일 기술위원회가 열린다. 기술위는 대표팀 감독 교체와 새 사령탑 영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유임 보다는 경질 쪽에 무게가 쏠린다. 국민적 관심을 받는 A대표팀 감독직은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다. 이미 팬들은 슈틸리케 감독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 유임시 더 나은 축구를 펼칠 기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슈틸리케 축구로는 힘들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다. 팬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위원회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기술위원 역시 팬들의 지적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는 확실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일단 '포스트 슈틸리케' 시나리오는 두 갈래로 나뉜다. 외국인 감독일지, 아니면 국내 감독일지를 정해야 한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기 쉽지 않다. 일단 후보군을 내리고 협상까지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여기에 새로운 외인 감독을 데려오려면 적어도 슈틸리케 감독 이상의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팬들의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월드컵 진출의 갈림길에 있다. 월드컵에 탈락할 수도 있는 팀을, 그것도 단 3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팀을 맡는 도박을 할 명장급 감독은 그리 많지 않다. 이를 커버해줄 수 있는 것이 돈인데, 이미 슈틸리케 감독 협상 당시 드러났지만 협회는 감독에 그리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후안데 라모스 등은 모두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국내 감독인데, 이 역시 상황은 여의치 않다.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인 신태용 감독의 상황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코치로 활약했던 신 감독은 지금 대표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올림픽을 통해 국제대회 경험까지 경험한 최고의 카드다. 하지만 신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번 대회는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열린다. A대표팀의 카타르전(원정)은 6월 13일 잡혀있다. A대표팀은 이 카타르전을 앞두고 조기 소집을 예고했다. 6월 8일에는 이라크와의 평가전까지 예정돼 있다. 일정상 겸임이 불가능하다.
무리해서 신 감독을 선임할 경우, U-20 월드컵의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 U-20 월드컵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구대회다. 협회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 대회를 앞두고 수장 교체를 언급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수다. 한국축구의 자산인 신태용 카드를 너무 빨리 쓰는 것도 문제다. 이미 우리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후 홍명보라는 자산을 잃었다. 리우올림픽, U-20 월드컵에 이어 A대표팀까지 3연속으로 신 감독을 소방수로 기용하는 것도 부담이다.
대신 신 감독의 수석코치 복귀 가능성도 열려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가장 좋았던 아시안컵과 2차예선 당시 신 감독은 선수 선발과 지도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 유임과 신 감독 활용이라는 두가지 카드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선택이다. '노장 감독의 원포인트 부임'도 빼놓을 수 없는 카드다. 노장 감독으로 하여금 남은 3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혹은 카타르전까지 치르고 신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길 수도 있다. 지금 대표팀의 문제는 기량 자체 보다는 분위기를 잡지 못한 측면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이 풍부한 감독의 존재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월드컵, 올림픽 등을 경험한 허정무 프로연맹 부총재,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 등의 이름이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팬들의 눈높이가 차지 않는 선택이 될 수 있다. 현장을 3~4년 떠나 있었다는 점도 문제다.
기술위는 과연 어떤 시나리오를 갖고, 어떤 선택을 내릴까. 그 결과는 3일 공개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