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과 천재. 모순된 두 단어를 동시에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도 꽃을 피우지 못한, 그야말로 비운의 천재들이다. 축구계에도 '비운의 천재'로 불린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병수 서울 이랜드FC 감독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 이랜드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은 현역 시절 '축구 천재'로 불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될 성 부른 나무로 큰 관심을 모은 김 감독은 급기야 포철축구단에 초대돼 최순호와 같은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길렀다. 1987년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축구연맹(FIFA) 16세 이하(U-16) 세계선수권에 출전해 한국의 8강행에 힘을 보탰다. 하이라이트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예선 한-일전이었다. 그는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에 본선행 티켓을 선물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꽃피운 재능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고등학생 때 입은 발목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발목 인대가 늘어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것.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김 감독은 결국 성인 무대에서 제 기량을 뽐내지 못한 채 1997년 일본 오이타 트리니타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는 지도자로 축구와의 연을 이어갔다. 은퇴 후 모교인 고려대 코치를 시작으로 포항 2군 코치, 영남대 감독 등을 역임하며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특히 김 감독은 2008년 영남대 부임 뒤 2013년 대학 리그 왕중왕전, 2016년 추계연맹전, 전국체육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활짝 웃었다.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FC의 제3대 사령탑에 오르며 프로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김 감독과 닮은꼴 인생을 산 또 한 명의 '비운의 천재'가 있다. 바로 김종부 경남FC 감독이다. 그는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FIFA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4강 주역이자 1986년 멕시코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에 첫 승점(1대1)을 안긴 스타였다. 하지만 그 역시 일찍 피운 재능에 발목을 잡혔다. 고려대 시절 스카우트 파동을 겪은 김 감독은 1987년 한-일 프로 친선전에서의 소속 논란으로 1년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어야 했다. 성인 무대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남기지 못한 김 감독은 1995년 대구 로얄즈를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비록 성인 무대에서 롱런하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는 착실하게 제 길을 걸어왔다. 거제고, 동의대, 중동고 감독 등을 거쳐 2013년 챌린저스리그(3부 리그) 소속 화성FC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2014년 화성FC를 챌린저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6년 K리그 챌린지 경남 감독에 올랐다. 지난 시즌 경남은 심판매수로 승점 10점 삭감이라는 징계를 받고 시작한데다 예산도 변변치 않았지만, 김 감독은 팀을 리그 8위에 올리며 합격점을 받았다.
이제는 지도자로 축구인생 2막에 도전하고 있는 '비운의 천재' 김병수, 김종부 감독. 닮은꼴 두 지도자의 프로 무대 첫 맞대결이 12일 잠실주경기장에서 펼쳐진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