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역주행 드라마.
초반에는 최약체로 분류돼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갈수록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는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해 말에는 MBC 수목극 '쇼핑왕 루이'가 있었다. '쇼핑왕 루이'는 방송 전까지만 해도 최약체로 분류됐지만 점차 팬덤을 확대해 나가며 수목극 1위 자리까지 탈환했다. 최근엔 KBS2 수목극 '김과장'이 이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1,2회 방송은 평이한 수준의 호응을 얻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인기 수직 상승 곡선을 그리며 수목극 1위 굳히기에 나섰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역주행 드라마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을 살펴봤다.
▶ 스타 마케팅? '연기 구멍' 없는 게 더 중요해!
'쇼핑왕 루이'와 '김과장'의 첫번째 공통점은 경쟁작에 비해 스타 파워는 조금 밀릴지 몰라도 전 출연진이 탄탄한 연기를 선보이며 몰입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쇼핑왕 루이'의 경우 '파스타'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서숙향 작가가 집필하고 공효진-조정석-고경표를 캐스팅한 SBS '질투의 화신', 김하늘과 이상윤을 전면에 내세운 KBS2 '공항가는 길'과 맞붙었다. 각 경쟁작이 쟁쟁한 스타들을 내세웠다. 그에 반해 '쇼핑왕 루이'에는 서인국 정도가 팬덤을 거느리긴 했지만, 그마저도 출연작마다 시청률 참패 기록을 이어왔던 상태였다. 당연히 초반 이슈 몰이에서 경쟁작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쇼핑왕 루이'는 오대환 윤상현 등 막강한 연기 내공을 갖춘 베테랑 조연들의 서포트에 힘입어 선전할 수 있었다.
'김과장'은 원조 한류스타 이영애-송승헌을 캐스팅한 200억 대 사극 블록버스터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 경쟁한다.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나오는 이영애와 송승헌이다. 반면 '김과장'에는 남궁민이 홀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궁민은 코믹신이 강령한 듯한 연기로 시선을 강탈했다. 남궁민이 하드캐리로 극을 이끄는 가운데 남상미 이준호(2PM) 김원해 김강현 박영규 등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출구를 막아버렸다.
이처럼 두 드라마 모두 소위 말하는 '연기 구멍' 없이 모든 캐릭터가 제 몫을 톡톡히 해내다 보니 흐름을 끊거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사라져 완성도와 재미를 높일 수 있었다.
▶ 홍보 마케팅? 우린 작품성으로 승부해
'쇼핑왕 루이'와 '김과장' 모두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시작된 작품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쇼핑왕 루이'와 경쟁했던 '질투의 화신'과 '공항가는 길'은 모두 초대형 스타와 제작진이 뭉쳐 이제까지의 로코물, 혹은 멜로물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며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쇼핑왕 루이'는 공모작 당선작이라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정보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루이(서인국)가 고복실(남지현)을 만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그려내며 큰 호평을 받아냈다.
'김과장'도 마찬가지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200억 대작이며 초호화 캐스팅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MBC '미씽나인'은 한국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무인도 생존 미스터리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시작 전부터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나 '사임당, 빛의 일기'는 역사적 고증 문제와 교차 편집의 산만함, 타임슬립 소재의 식상함 등을 이유로 고전했다. '미씽나인' 또한 늘어지는 전개로 한국판 '로스트'가 되는데 실패했다. 그 사이 '김과장'은 답답함 없이 시원하게 밀고 나가는 하이패스 전개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시청자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홍보 마케팅은 초반 시청자 유입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작품성이 갖춰졌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 뻔할 줄 알았지? 반전의 연속
'쇼핑왕 루이'와 '김과장'은 기분 좋은 반전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쇼핑왕 루이'는 기억상실, 재벌 3세와 평범한 여자의 사랑, 집안 재산 다툼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를 B급 병맛 코드로 유쾌하게 비틀어내며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남자주인공인 루이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멍뭉' 캐릭터로 설정, 이제까지의 로코물과는 사뭇 다른 '동화같은 드라마'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신인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는 평이다.
'김과장'은 흔한 기업 드라마가 아니겠느냐는 우려를 받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이제까지 우리가 봐왔던 기업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 풍자 개그를 뽑아내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일반 기업 드라마가 혈연, 혹은 치정 관계에서 비롯된 권력 싸움과 암투를 그리는데 반해 '김과장'은 현실감을 추구했다. 현실에서 문제가 됐거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에피소드로 구성,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 안에 현실 속 부조리를 교묘하게 꼬집어내는 풍자 개그를 심었다. 박재범 작가의 반전에 시청자도 기분 좋게 당했다.
결국 드라마의 흥행은 스타 캐스팅이나 스케일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완성도 있는 대본, 감각적인 연출이라는 기본기가 갖춰졌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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