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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스헬스] '국민감독' 김인식이 전하는 '희망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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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감독을 두 명이나 추천했는데, 저더러 또 하라네요, 허허".

난처해하면서도 웃음 섞인 그의 '투정'이 건강해보였다.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그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무색할 정도였다. 3월 열리는 WBC 지휘를 또한번 맡게 된 '국민감독' 김인식(70). 그를 만나자마자 "사진보다 젊어보이시네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 2004년 말 뇌경색을 겪은 후 12년 넘게 흘렀다. 뇌졸중을 극복한 인물의 대명사, 김인식 감독이다. 노년층 증가로 뇌졸중을 겪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그 이후 그들의 '삶의 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온이 뚝 떨어질 때 잘 발생하는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터지는 뇌출혈로 나뉜다.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뇌가 손상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신체적 장애는 물론, 인지 기능과 관련된 부위의 혈관이 손상되면 갑작스런 치매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르게 대처하고 재활을 열심히 하면 후유증을 최소화해 일상생활의 불편 없이 지낼 수도 있다. 김인식 감독은 전문의들 사이에서 '모범사례'로 꼽힌다. 성공적으로 재활하고 끊임없이 관리한 덕에, 조금 불편한 오른발을 제외하면 일상생활은 물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감독직도 문제 없다. 지난달 말, WBC 선수단 출정식을 앞둔 김인식 감독을 서울 도곡동 한국야구회관에서 만났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

▶ 아쉬웠던 '골든 타임'…'한쪽만 마비'가 전조 증상

'어쩌다 그런 일이…'. 뇌졸중을 겪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이, 발생 당시 '그때 그 상황'이다. 김인식 감독은 10여년이 지났지만, 뇌경색이 왔던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04년 12월 초, 일본 전훈서 돌아온 김감독은 김해님의 대전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 겨울비가 내렸는데, 김 감독은 전훈 당시 착용했던 여름양복을 입고 비를 맞았다. 또 당시 숙소인 아파트는 온돌이 아닌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는 곳이었는데, 잠자리에서 오한을 많이 느꼈다. 그 이튿날에도 마정길의 결혼식 참석차 구단버스로 청주에 간 김감독은 찬바람을 많이 맞았는데, 그 느낌이 유난히 싸늘했다. 당시 식장에서 뷔페식을 먹었는데, 그 때 음식을 가지러 갈 때 주위에서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하다는 말을 들었고 오른손이 말을 안들어 요청받은 싸인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뇌경색 신호'가 온 것이다.

신용삼 서울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졸중의 가장 일반적인 전조증상으로 심한 두통, 편마비, 언어장애, 한쪽 시야가 흐려지는 것 등을 꼽았다. 양쪽 모두에 힘이 빠지는 것은 뇌졸중 증상이 아니다. 특히 잠시 왔다 지나가는 '일과성 뇌허혈' 증세를 무시하면 한달 내에 뇌졸중이 올 수 있어서 '경고신호'를 주목해야 한다. 또한 신호가 오면 바로 병원으로 가서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 뇌졸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뇌졸중이 의심되면, 그 즉시 시간을 재며 우선적으로 치료에 들어간다. 최고의 '골든타임'은 증상이 나타난 후 4시간 반 이내다. 이 시간에 혈전용해 주사를 맞으면 최선의 치료가 된다. 또한 8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면, 혈관 속 찌꺼기를 제거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이 안타까워 하는 점도 이 점이다. 김 감독은 결혼식장에서 바로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시간을 지체한 게 몹시 후회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청주에서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고 기다렸다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최고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그래도 전문의들은 김 감독이 '운이 좋은 경우'라고 입을 모은다. 김 감독도 늦었지만 병원에 가서 혈전용해 주사를 맞으니 굳었던 몸이 다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전조 증상을 재빠르게 캐치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몸 한쪽의 힘이 잠시라도 빠지는 것 같으면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 힘겨웠던 재활…고 최동원 코치가 헌신적으로 도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인 쉰여덟. 2004년 한 해 동안 야구계를 떠나 있다가 10월 한화 감독 계약서에 사인한 후 갑자기 찾아온 뇌경색이 더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또 매년 건강검진에서 심각한 위험 징후는 없었던 만큼 충격도 컸다.

김감독은 '손가락 끝을 구부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말은 재활이었지만, 그저 손을 들어올리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운동선수였고, 그 후에도 체육인으로 살아온 수십년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침, 점심, 저녁 2시간씩 하루 6시간의 재활을 빼먹지 않고 했다. 김인식 감독은 이 재활 과정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최동원 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많은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한달여 만에 병원 생활을 끝낸 김 감독은 바로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백남종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재활 시작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면서,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조기 재활'이 강조돼 중환자실에서도 재활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빠르면 1~2일 내에 앉는 것부터 시작하고, 3~6개월까지가 '재활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에 재활을 열심히 하면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일상생활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

한편 김인식 감독은 지금도 하루 1시간 집주변을 걷고,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나름대로의 운동법을 만들어 침대에서도 팔다리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백남종 교수는 "뇌졸중 재활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권하는 운동은 '걷기'지만, 견통도 흔해 어깨 운동과 손 마비를 풀기 위한 섬세한 운동도 많이 권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인식 감독처럼 '오른쪽 마비'는 왼쪽 뇌에 뇌경색이 생긴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실어증이나 발음이 잘 안 될 경우 언어치료가 필수다. 김감독의 경우도 조금 어눌해졌던 말투가 이제는 뇌졸중 전처럼 돌아왔다.



▶ 하루 담배 3갑 골초가 '금연전도사'로…

하루 3갑. 말 그대로 '담배가 안주'였다. 술을 좋아하던 김인식 감독은 "도무지 담배를 줄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뇌경색 직후, 김 감독은 입원했던 병원에서 한화 프런트에게 전화해 "책상 속 담배를 모두 없애라"고 했다. 그게 담배와의 이별이었다. 김 감독은 나중에 술은 가끔 생각났지만, 담배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김인식 감독은 주변에 금주와 금연을 권하는 '모범생활 전도사'가 됐다. 주변의 '말술'이나 '골초'들을 '계도'하는 입장이 된 것.

김인식 감독은 금연·금주 외에도 기름진 음식을 제한하는 등 건강 식단을 챙겼다. 초기에는 콜레스테롤 관리 때문에 좋아하는 새우를 못먹어서 볼멘 소리도 했지만, 이제는 가리는 식품 없이 일반적인 식단으로 돌아왔다. 특히 최근엔 마음에 드는 건강식품도 찾았다. 김 감독은 1년 가까이 먹고 있는 천마가 몸에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마비됐던 오른쪽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라는 것. 하루 3번 차로 챙겨 마셔야 하는데, 최근엔 너무 바빠 2번밖에 못 마신다면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신용삼 교수는 "뇌졸중 예방은 어렵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면서 우선 고혈압 관리, 혈관 변성을 막기 위한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 금연 등을 주요 예방법으로 꼽았다. 담배는 혈관 벽을 직접 파괴하기 때문에 금연은 필수 중의 필수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약 2.6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교수는 "생활 습관이나 만성질환 관리를 잘하면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것을 제외하고 중풍 가능성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면서 혈관 통합 관리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인식 감독도 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 등을 통해 꾸준한 관리를 하고 있다.



▶ 우울증도 뇌졸중 증상…심리적 안정돼야 신체 재활도 원활해져

김인식 감독은 "본인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절망하면 안되고 적극적으로 운동하며 이겨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최동원 코치가 날 재활운동실로 끌고 가고, 몸을 받쳐 주는 등 애를 많이 썼다"는 그의 말은 뇌졸중을 겪은 환자들과 그 가족, 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체적인 재활 뿐 아니라 심리치료도 뇌졸중 재활의 주요 부분이다. 뇌손상과 더불어, 신체적 후유증에 대한 비관으로 자칫 심리적 위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고대 구로병원 뇌신경센터 김지현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우울감은 2배·자살시도율은 3배가 넘는다. 그만큼 주변의 각별한 배려와 지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백남종 교수는 "우울증은 뇌 손상 때문에 생기는 뇌졸중의 대표적 증상" 이라면서 "우울증을 회복해야 신체 재활운동도 원활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약물치료와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꾸준한 재활을 통해 뇌 기능 회복이 어느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적극적인 의지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김인식 감독의 경우 본인의 현장 복귀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 주변의 지지가 탄탄했기 때문에 뇌졸중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 재활과 꾸준한 관리를 통해 활기찬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김인식 감독은 수많은 뇌졸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프로통산 980승. 20승이 모자란 1000승이다. WBC 등 국제대회를 통해, 그리고 재활을 통해 '희망의 증거'가 된 김인식 감독. 언젠가 프로 감독 1000승을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