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만 가득하던 여자프로농구에 두 햇살이?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고위 수뇌부와 6개 구단 감독들, 그리고 억대 연봉을 받는 베테랑 선수들은 부끄러우면서 고마워해야할 것 같다.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두 어린 선수들에게 말이다. 김지영(부천 KEB하나은행)과 이주연(용인 삼성생명 블루윙스)이 아니었다면, 악재로 가득찼던 여자프로농구를 보는 재미가 아예 없을 뻔 했다.
23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과 KEB하나은행의 경기. 이날 게임은 KEB하나은행이 69대65로 신승하며 개막 5연패 후 2연승을 달렸다. 경기 자체도 흥미진진했지만, 가장 눈에 띈 건 양팀의 막내 선수들, 김지영과 이주연의 활약이었다.
김지영은 이날 경기 8득점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드로서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 16일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전에서는 12득점 5어시스트로 팀 연패를 끊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시즌 데뷔전이었던 14일 구리 KDB생명 위너스전에서는 혜성과 같이 등장해 16득점을 몰아쳤다. 3경기 만에 '내가 KEB하나은행 주전 가드'라는 각인까지 확실히 시켜놨다.
경기는 졌지만 삼성생명도 이주연이라는 보물을 발굴해냈다. 태국에서 열린 U-18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온 이주연은 이날 경기 3쿼터 처음으로 프로 1군 경기에 발을 내딛었다. 떨릴 법 했는데, 거침이 없었다. 3점슛으로 첫 득점을 하더니 이날 경기 3점슛 2개 포함, 10점을 몰아쳤다. 9년 만에 신인선수가 데뷔전에서 두자릿수 득점을 했다. 박지수(청주 KB스타즈)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 그렇지, 이주연도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선발된 유망주 가드다.
두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단순히 득점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동안 여자프로농구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함을 갖췄고, 젊은 패기를 발산할 수 있는 당돌함이 엿보여서다. 김지영이 화제가 된 건 KDB생명전 유로스텝(지그재그로 스텝을 밟는 기술)에 이은 더블클러치 때문이었다. 그 것도 국가대표이자 리그 최고 가드 이경은을 앞에 두고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이주연 역시 KEB하나은행전 첫 3점슛으로 자신감을 얻더니 오른쪽 45도 지점에서 왼손 드리블 돌파 후 스핀무브(360도 회전 스텝)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레이업슛을 성공시켰다. 두 기술 모두 여자 무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신인으로 실책을 저지르면 풀이 죽을 법 하지만,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공격을 이어가는 당찬 모습도 닮았다.
두 사람은 인성여고 선-후배다. 김지영이 지난해 인성여고를 졸업했고, 이주연이 1년 후배로 올해 프로무대를 밟게 됐다. 인성여고는 팀 플레이 뿐 아니라 선수들의 개인기량 향상에 큰 초점을 두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프로농구는 온갖 악재 속에 개막을 맞이했다. 첼시 리 사태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은 채 어영부영하며 시즌 개막을 강행했다. WKBL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 문제로 KEB하나은행을 떠났던 박종천 전 감독이 곧바로 해설위원직 계약을 체결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개막 후에는 또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독주 체제가 형성됐다. 새로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선수 아니면, 팀 내 1~2명 에이스 선수에만 의존하는 농구 색깔도 여전했다. 새로운 스타 탄생에 목말라하던 팬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여자프로농구는 2~3년부터 전 홍아란(KB스타즈) 신지현(KEB하나은행) 등 미녀 선수들 중심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아무리 이뻐도 스포츠에서는 실력,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한계를 줬다. 이 틈에 2명의 어린 선수들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오직 농구 실력 만으로 말이다. WKBL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 원석들을 어떻게 키워낼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 뿐 아니라 타성에 젖어 발굴하지 못했던 또 다른 유망주들이 없나 심각하게 주위를 살필 때가 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