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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꿈을 이어준 i-리그, 모두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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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꿈이 있었다.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어렵던 시절,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포기해야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다. 곱게 접어뒀지만 세월 속에 기억조차 희미해져버린 그 꿈, 아들이 깨웠다.

꿈의 대물림이었을까. 태어난 아들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다행히 아들도 축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선수가 되기엔 재능이 2% 모자랐다. 발도 느리고, 기술도 부족했다. 엘리트 선수는 언감생심이었다.

고심 끝에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래도 대물림한 꿈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땀 흘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꿈은 계속 이어졌다. 포기할 수 없었다. 20일 막을 내린 2016년 i-리그 왕중왕전(주관 대한축구협회)은 아빠와 아들의 꿈이 현실 속에 펼쳐진 무대였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20일 홍천종합운동장.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각 팀들의 시선은 청주 FC CTS-대구 준스포츠의 마지막 한경기에 집중됐다. 7개월간의 대장정을 정리하는 결승 무대. TV 중계를 위해 카메라가 설치되고, 탈락한 팀들, 함께온 가족, 관계자들이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제법 진짜 축구대회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어린 선수들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관중석도 감염됐다. 학부형들도 덩달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8일부터 3일간 열린 2016년 i-리그 왕중왕전(주관 대한축구협회)은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i-리그 지역 리그의 결산 무대이자 보너스 스테이지였다. 지난 3차례는 지역 리그에서 마무리 했지만 올해 처음으로 왕중왕전을 도입했다. 전국 27개 시군구 지역을 대표하는 54개팀이 영광의 최종 무대에 올랐다. 대상은 초등학교 5~6학년으로 한정했다. 결과보다는 과정, 필승보다는 즐기는 문화를 표방하는 i-리그. 하지만 왕중왕전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최종 무대인 왕중왕전까지 진출한 만큼 선수, 선생님, 부모님 모두 '기왕이면 우승'의 욕심이 제법 나는 듯 했다. 승부는 승부였다. 결정적인 골을 터뜨린 학생의 세리머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저리가라다. 벤치에 앉은 선수들도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쳤다. 지고 우는 학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얼마나 억울한지 엄마의 위로에도 눈물은 하염 없이 흘렀다. 하지만 페어플레이란 대회 정신이 선수 개개인에 스며있었다. 한바탕 눈물을 쏟은 뒤 승자에 대한 축하의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한창 웃고 있던 승리 팀 선수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패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지난 7개월간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바로 '존중'이었다.

FC CTS와 준스포츠의 경기가 치열하게 전개됐다. 보는 이들 모두 손에 땀을 쥐고 몰입했다. 대접전 속에서도 i-리그 본연의 취지는 잃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지시 대신 격려를 보냈다. 잘하는 선수들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출전시간을 고루 배분했다. 끌려다니던 준스포츠는 부족한 시간 속에서도 선수교체를 단행했다. 동점골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라도 더 많은 선수가 그라운드를 밟는 것이었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끝에 FC CTS가 3대2로 이겼다. FC CTS의 이주현군(12)은 "꼭 월드컵 결승전을 치른 것 같다. 중학교에 가면 이런 대회는 이제 못치를 것 같은데 좋은 성적을 얻어서 기쁘다"고 했다. 경기 내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있던 학부형 배창렬씨(42)는 "지역리그부터 아들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며 "축구선수를 하고 싶었는데 아들이 그 꿈을 대신 이뤄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결승전 후 곧바로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우승을 차지한 FC CTS가 시상식을 위해 움직이자 각 팀들 선수들이 큰 소리로 "FC CTS 우승, 축하축하"를 외쳤다. 프로 무대에서도 보기 힘든 진정한 '리스펙트', i-리그에서 보게될 줄이야. 실로 기적 같은 장면이었다. 상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아이들 모두 이번 대회를 통해 룰을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는 법을 배웠다. 땀 흘리며 함께 몸을 부대낀 동료들은 소중한 친구로 남았다. 패자 없는 모두가 승자로 남은 대회, 소중한 가치와 친구를 얻을 수 있었던 대회. i-리그는 진정 모두를 위한 축제였다.

홍천=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