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17일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난 뒤 "4년 동안 따뜻하게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넥센 감독으로서 4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우승하고 싶었지만 제 역량이 부족해서 구단과 팬들에게 우승을 못이뤄드린것 같아서 죄송하다"면서 "실패의 책임은 감독인 저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오늘부로 감독직을 물러날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팬들은 충격이라는 반응이다. '염갈량', '젊은 여우' 등으로 불리며 팀을 4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끈 지도자. 올해는 유력한 꼴찌 후보 넥센을 페넌트레이스 3위로 이끌었다. 2~3년 뒤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전력을 만들었다. 선발 신재영부터 셋업맨 이보근, 마무리 김세현, 외야수 박정음에 임병욱까지. 물음표만 가득 달린 팀을 완벽히 세팅했다.
이들 중 신재영과 김세현의 기용은 그의 감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려준다. 지난 시즌 뒤 사이드암 한현희가 수술을 받겠다고 했을 때다. 굳이 칼을 대지 않아도 되지만 선수 본인이 토미존서저리(인대접합 수술)를 강력히 원했다. 이에 따라 염 감독은 "조상우를 2016시즌 마무리로 기용하겠다"며 한현희 없는 마운드를 머릿속에 그렸다. 나머지 불펜진은 캠프에서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조상우마저 수술대에 올랐다. 역시 팔꿈치에 탈이 났고 지난 3월 인대접합 수술과 주두골 피로골절 핀 고정술을 받았다.
대위기였다. 전문가들이 올 시즌 넥센을 꼴찌 후보로 점친 이유다. 하지만 염 감독은 빠르게 팀 전력을 재정비해 선수단이 동요하지 않도록 했다. 일단 일찌감치 4선발로 낙점된 김세현에게 "마무리할 의사가 있나. 원한다면 마무리로, 아니면 계속 선발을 하라. 하기 싫은 보직을 시키지는 않겠다"고 의견을 물었다. 김세현의 답은 "마무리를 한 번 해보겠다"는 것. 줄곧 눈 여겨 본 신재영에게도 "제구가 좋으니 변화구를 좀 더 가다듬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선발로 뛸 준비를 하라. 너의 장점만 살리라"는 지시를 했다. 다시 말해 한현희와 조상우가 갑작스럽게 이탈하며 새 판을 짜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플랜 B, 플랜 C를 가동했다.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가능했던 빠른 대처였다. 그리고 이 같은 빠른 판단과 결단이 팀을 정규시즌 3위로 이끈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야구인 선배들조차 놀란 넥센의 반전이었다.
하지만 내년 시즌 더 강해질 넥센을 앞두고 그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남은 계약기간 1년 동안 한현희와 조상우, 김택형, 강윤구, 박정음 등 재활을 마친 선수를 모두 가동해 올해 하지 못한 야구를 펼칠 수 있음에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홀연히 떠났다. 이 과정에서 내년 시즌 염 감독이 SK 와이번스 지휘봉을 잡는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다른 구단에서도 염 감독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해 접촉을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는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우리 팀을 너무 흔든다. 지금은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집중해야 할 때다. 왜 자꾸 이런 말들이 나오는지…"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실 염 감독의 입에서 '책임'이라는 말을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한 뒤에도 "모든 건 내 책임이다. 선수들은 잘 싸워줬는데 내가 부족했다"며 자진 사퇴할 뜻을 내비쳤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특정 구단과의 루머는 없었다. 온전히 준PO 탈락에 따른 책임을 지려했다. 그러다 이후 구단 수뇌부와 만난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더 높은 바라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올 시즌 자신의 목표인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에 실패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황에서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결국 "팬들에 미안하고 구단에 감사하다"며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아마야구 발전을 위한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