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는 성벽(性壁)이 없는 스포츠다. 그렇다고 근력과 체력 등 신체상의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0kg대 거구에 올라 2000m에 이르는 장거리를 시속 70km로 질주하며 싸움을 벌여야 되는 만큼 기수들의 얼굴은 매 경기 땀과 모래로 얼룩지게 된다. 때문에 통상 경마는 남자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분명 여자 기수들도 남자 못지않은 열정과 실력으로 활동 중이다. 그중에는 김혜선 기수처럼 뛰어난 성적을 기록 중인 여장부도 있다.
성별에 따른 어떠한 핸디캡도 없이 동일한 환경에서 승부를 벌여야 되는 스포츠 '경마'. 그런 만큼 '여자 박태종' 김혜선 기수의 200승은 값질 수밖에 없다. 김혜선은 코리아컵이 개최된 지난 11일(일), 1경주와 3경주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200승을 달성했다. 지난 2013년 11월, 한국 여성 기수 최초로 100승을 달성한지 정확히 2년 10개월만이다. 그녀는 "우승을 자신할 상황이 아니었던 만큼,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두 경주 모두 양재철 조교사의 말이었다. 이와 관련해 김혜선 기수는 "보통 이런 경우 조교사님들이 먼저 축하해주곤 하는데, 오랜만의 우승이라 그런지 정작 본인의 우승에 더욱 기뻐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정작 200승을 달성하고 나니 기쁨만큼이나 허무함도 크단다. 김혜선 기수는 "100승까지 매번 숫자를 셌다. 하지만 정작 달성하고 나니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고, 잠시 슬럼프도 찾아왔다"며 "이제는 300승을 달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착잡하기도 하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털털함과 솔직함이 매력인 김혜선 기수의 별명은 '여자 경마대통령', '여자 박태종'이다. 올해 2000승을 달성하며 한국경마의 한 획을 그은 박태종 기수와 단순 비교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나 여성으로서, 더군다나 7년 만에 200승을 달성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성적만 놓고 봐도 김혜선 기수는 60여명이 활동하는 서울에서 지난해에는 7위에, 올해는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혜선 기수는 "박태종 기수는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기수라 주변에서 별명을 불러주면 힘든 상황에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며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사실은 굉장히 기쁘고 과분한 별명이다"고 했다.
남자들 속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이유로 그녀는 '열정'과 '혹독한 체력관리'를 강조했다. 김혜선 기수는 "열정이 강했던 만큼 과거에는 심할 정도로 운동에 집중했다. 언젠가 확인해보니 서울에서 문세영 기수 다음으로 기승수가 많더라"며 "지금은 요령이 있어서 과거처럼 많이 힘들진 않다. 과거처럼 무식하게 운동하는 게 아니라 경주 중 약점이라 느껴지는 부분을 보완하는 식의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내년에 쓸 힘을 비축한다는 생각으로 올해는 체력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몸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결과 성적은 좋았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며 "그래서 올해는 경주마도 하루에 10두 이하로 훈련시키려고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여성으로서의 강점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섬세함'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확실히 남자에 비해 힘이 딸리다보니 자연히 이를 보완할 해결책을 찾게 됐다. 다행히도 말은 기계가 아니다. 때문에 성격도 제각각이고 주행습관도 제각각이다. 그런 부분을 빨리 캐치하려고 했다. 어떡해야 경주마가 잘 뛸지 면밀히 살피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또 다른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라고 했다.
김혜선 기수의 현재 목표는 대상경주 우승이다. 그녀는 "특별경주에서는 우승을 해봤지만 대상경주에서는 경험이 없다. 우승을 한다면 여자기수로서도 최초의 일이다"라며 "대상경주 우승 후에야 비로소 여자 박태종이란 별명에 떳떳해질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아직도 대상경주에 있어선 남녀의 벽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 것 같다"며 "믿음을 갖고 좋은 경주마를 주기만 한다면 나 역시 좋은 성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심감을 보였다.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