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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논하다②] 손예진, 충무로 멜로퀸서 흥행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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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배선영 기자] 손예진만큼 필모그래피가 풍성한 여배우가 없다.

데뷔 직후, 따라올 자 없는 독보적 청순 미모로 멜로퀸으로 착륙한 손예진은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듯 '연애소설'(2002), '클래식'(2003) 등의 멜로물에 출연했다.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력은 물론, 눈물이 맺힌 눈동자만으로 감정의 진동을 만들어내는 고전적이면서 청초한 외모는 대중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2016년. 손예진은 멜로퀸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몇 안되는 여배우로 성장해왔다. 올 해 6월 개봉한 '비밀은 없다'의 연홍과 지난 8월 개봉해 500만 관객을 끌어들인 '덕혜옹주' 속 덕혜옹주 캐릭터는 충무로에는 극히 드문 남성에 속박되지 않는 여성 캐릭터이거나 극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타이틀 롤이다. 과거의 손예진만 생각하면 멜로가 다 말라죽어버린 오늘의 충무로에 여전히 그녀가 원톱 여배우로 남아있을 것을 예측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것이 곧 배우 손예진의 저력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타인이 그어놓은 틀 안에 머물지 않았다. 특화된 멜로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주하되 다양한 장르에 겁없이 도전했다. '클래식'을 비롯해, 드라마 '여름향기'(2004) 등으로 특유의 청순가련 멜로퀸의 이미지로 사랑받던 와중에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로는 코믹적 요소를 끌어들였으며,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와 '외출'(2005)로 멜로에 더 깊이 파고 들면서 '연애시대'(2006)를 통해 특유의 감성 안에 생활밀착형 캐릭터를 연기해 배우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더 확장시켰다.

액션 스릴러인 '무방비도시'(2007)에서는 청순가련 이미지를 탈피하려 애를 써보기도 하다가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와 같은 영화에서는 스릴러 가운데에서도 손예진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장르와 한데 섞어 활용하기도 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내가 결혼했다'(2008)의 경우, 독창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해 빤하지 않은 로맨스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재난영화 '타워'(2011), 스릴러물 '공범'(2013), 블록버스터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 등을 거쳐 올해는 이경미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비밀은 없다'를 통해 연홍 캐릭터의 반전을 보여주는 것에 성공했다. 딸 아이의 실종 이후 뒤틀려 가는 연홍 캐릭터는 극 초반 뻔해 보이는 정치인의 아내에서 한국 영화에서는 드문 주체적 여성 캐릭터로 변신해 나갔다. 연홍의 광기 어린 변주에 손예진의 연기가 큰 힘을 발휘했다.

이어 선보인 '덕혜옹주'는 배우 손예진의 혼신과 진심, 책임감이 뒤섞인 총체적 캐릭터다. 영화 밖에서는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10억의 거액을 투자하고 영화 안에서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간 한 여인의 일대기를 밀도있게 연기했다. 일본으로 쫓겨나게 된 10대 시절부터 얼굴에 검버섯이 피는 노녀의 초라한 모습으로 이어진 한 여인의 비극적 삶을 통해 시대의 비극성을 담아낸 '덕혜옹주'는 여러모로 그녀의 인생작이라 할만하다.

'선굵은' 남자 캐릭터들만 득실한 충무로에서 손예진만큼 매 작품 자신의 얼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해 온 배우는 드물다. 그런 면에서 올해 선보인 두 작품은 특히나 손예진의 필모그래피에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두 작품을 지나온 손예진은 또 어떤 연기로 그녀를 확장시킬까.

sypo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