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이라는 표현말고는 더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다. 한화 이글스 좌완 필승조 권 혁의 부상 이탈. 단순한 일시적 1군 엔트리 제외라고만 보기 어렵다. 그래서 '치명적'이다. 한화의 시즌 막판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 혁은 지난 24일 대전 넥센전을 앞두고 왼쪽 팔꿈치 통증 때문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지난해부터 한화 유니폼을 입은 권 혁이 시즌 중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로 누적에 따른 허리 통증이나 편두통 증세로 고생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1군 엔트리에 남아 컨디션을 회복한 뒤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렇게 아예 사라진 건 그만큼 권 혁의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권 혁은 어지간한 피로나 근육통 정도는 담담히 이겨내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한창 '혹사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내가 괜찮다는 데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몸상태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랬던 권 혁이 도저히 못버틸 정도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누적된 엄청난 투구이닝과 투구수에 따른 데미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 혁은 부상 이전까지 지난 2년간 무려 144경기에 나왔고, 여기서 207⅓이닝을 던졌다. 시즌 평균 100이닝 이상을 거뜬히 넘겼는데, 중요한 건 권 혁이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라는 점이다. KBO리그 10개 구단 불펜 투수가운데 지난 2년간 권 혁보다 많이 던진 불펜 투수는 없다. 리그의 꽤 많은 선발 투수는 오히려 권 혁보다 적게 던졌다. 기이한 현상이다.
결국 팔꿈치에 탈이 났다. 현재로써는 권 혁의 팔꿈치가 얼마나 상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단순한 근육의 과부하에 따른 염증 증세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인대의 손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정확한 건 병원의 정밀 검진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팀 내부적으로는 전자인 '단순 근육통'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희망론일 뿐이다. 더구나 선수의 부상 정도에 관해 함구하는 팀의 특성상 권 혁의 정확한 팔꿈치 상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비공개로 묻힐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권 혁은 남은 시즌에 돌아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일단 팔꿈치 상태가 정확히 체크된 후 재활 일정이 나와야 하는데, 앞서 팔꿈치 '단순 통증'으로 엔트리에 제외됐던 장민재가 1군에 돌아오는데 17일이 걸렸다. 이 경우를 미뤄보면 권 혁도 최소 9월 중순은 돼야 1군에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전망일 뿐이다. 권 혁의 팔꿈치 상태가 장민재보다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복귀에 대해서는 선수의 의지도 크게 중요하다. 그런데 권 혁은 현재 팔꿈치에 통증이 생긴 점에 관해 크게 낙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팀 내부 관계자는 "팔꿈치에 통증이 생긴 뒤 권 혁이 몸관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자칫 크게 다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 혁이 올해 안에 다시 씩씩하게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