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27)은 긴 시간을 올림픽과 함께했다.
12년 전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 대회에 출전했다. 400m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됐지만 4년 뒤 그는 '무서운 10대'로 변신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 200m 은메달을 목에 걸며 최고의 해를 보냈다.
4년 전 런던 대회는 20대 박태환의 첫 올림픽이었다.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또 다시 4년이 흘렀다. 2016년 리우올림픽은 20대 박태환의 마지막 올림픽이다. 그러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잃어버린 2년'이 앞을 가로막았다.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되면서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가 끝났지만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판단을 구하는 힘겨운 싸움 끝에 지난달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받았다. 기약 없이 흘러간 2년 세월. 완벽해도 모자랄 올림픽 준비에 차질은 불가피했다.
천신만고 끝에 밟은 리우 땅. 우려는 현실이 됐다.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 예선에서 탈락한 박태환은 10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아쿠아틱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에서도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49초24. 전체 참가선수 59명 중 공동 32위였다.
13일 예선을 시작하는 자유형 1500m가 남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출전은 무의미했다. 가장 준비가 덜 된 종목이 1500m다. 포기했다. 박태환은 100m를 끝으로 리우올림픽을 마감했다. 11일 귀국길에 오르는 그는 13일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박태환은 100m 준결선 진출 실패를 눈으로 확인한 뒤 취재진 앞에 다시 섰다. 세번 실패 후의 만남. "제가 할 말이 있을까요." 목소리가 떨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4번째 올림픽'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여전히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신경쓰이는 듯 했다. 늘 밝은 표정의 박태환이지만 속 마음까지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번민의 밤을 보냈다. 100m 출전을 앞두고 그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팠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많은 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100m 역시 준비돼 있지 않은 레이스였다. 그러나 그는 물살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위에서 많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몸상태도 많이 가라앉았다. 힘들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겨내고 레이스를 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마음 먹었다. 그래서 아쉽다. 49초24는 베스트가 아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현역과 은퇴, 어느덧 선택의 기로에 섰다. 2020년 도쿄 대회는 30대에 열린다. 명예회복은 가능할까. 낙관보다 비관이 더 우세한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후원사없이 4년을 더 '홀로서기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는 선택은 분명했다. 환희와 눈물이란 이어온 마린보이의 극과극 수영 인생 레이스.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리우에 오기까지 박태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좋은 결과를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낀 적도 있다. 하지만 하필 20대 마지막 올림픽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줘 마음이 좋지 않다. 여기에 와서 제일 많이 한 말들이 '아쉽다', '죄송하다'였다."
아쉽지만 그는 4년 후를 기약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다. 박태환은 "이렇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내고 싶지는 않다. 만약 도쿄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시점부터 잘 준비하고 싶다. 일본은 가까운 나라다. 리우보다 환경이 더 좋을 것"이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수영에 대한 갈증이 더 강해졌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숙제를 풀어야만 했다.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마이클 펠프스(31·미국)는 이날 남자 접영 200m에서 개인 통산 20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대 최다인 그의 통산 올림픽 메달 수는 은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포함해 24개가 됐다. 또 올림픽 개인종목 중 한 종목에서만 4회 연속 메달을 딴 최초의 수영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박태환이 도쿄올림픽을 출전하면 그 때가 펠프스의 나이다. "나이도 중요하지만 펠프스 같은 선수들을 보면 '나라고 왜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시련 속에 더 단단해진 박태환. 제2의 도전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