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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솜사탕, 김치찌개…' 맛있었던 태극 여궁사들의 '퍼펙트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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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단체전 금메달입니다!"

대회 전 만난 태극 여궁사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선배들이 이룬 업적을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 아니 사명이었다. 모두가 당연시 여기는 금메달의 부담감, 상대들의 견제, 적응될만 하면 바뀌는 규정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배들이 그랬듯, 그녀들은 그 모든 장벽을 뛰어넘었다. 이번에도 금메달은 태극낭자들의 몫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이어온 쾌거였다.

기보배(28·광주시청) 장혜진(29·LH) 최미선(20·광주여대)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은 8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전에서 러시아를 세트스코어 5대1(58-49 55-51 51-51)로 꺾고 8연패의 대업을 이뤘다. 한 종목서 한 국가가 8번 연속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것은 올림픽 역사상 단 3번 밖에 없는 대기록이다.

8강부터 결승까지 고비도, 적수도 없는 '퍼펙트 금메달'이었다. 일본, 대만, 러시아를 맞아 단 한차례도 세트를 내주지 않았다. 경기 시작 전이면 셋이 머리를 맞대고 각오를 다졌다. 시작과 함께 쾌활한 맏언니 장혜진이 문을 열었다. 다음은 진중한 막내 최미선이 연결하고, 경험 많은 기보배가 마무리했다. 매서운 눈빛으로 활을 쏘는 '세자매' 사이에서 상대가 노릴 틈은 없었다.

시위를 당길 때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과녁을 노려보던 그녀들. 사대를 내려온 순간 천진난만한 소녀가 됐다. 웃다가 울다가 어쩔 줄 모를만큼의 기쁨이 틔워준 꿈 길을 사뿐히 걸었다. 많은 이들의 환호와 플래시 세례 속의 샤워로 그동안 흘려온 땀과 노력의 흔적을 씻어냈다. 꿈에 그리던 금메달 맛, 과연 어떤 특별함이 있었을까.

▶그녀들에게 금메달 맛은?

경기 후 기보배는 유난히 많은 눈물을 흘렸다. 기보배는 이번 여자대표팀에서 유일한 올림픽 경험자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단체전, 개인전 2관왕을 차지했다. 금메달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일까. 기보배는 통산 세번째로 거머쥔 이번 금메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그토록 원했던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너무 영광스럽고,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 같다." 그에게 물었다. 금메달 맛은 어떠냐고. "힘들지만 이 맛은 잊을 수가 없어요. 엄마가 해주시는 김치찌개 같아요."

장혜진은 크게 웃었다. 장혜진은 이날 부담스러운 1번 주자를 맡았다. 거침이 없었다. 자신을 믿는 동생들을 위해 일부러 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시위를 당겼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담 있는 모습을 안보여주려고 했다. 서로 믿고 의지 했던 그 놀라운 힘이 큰 성과로 이어졌다." 4년 전 대표팀 탈락의 아쉬움도 이번 금메달로 잊었다. '얼마나 좋냐'는 질문에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며 웃었다. 눈에 띄는 외모로 검색어 1위까지 오른 장혜진에게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꿈 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일까. 장혜진이 공개한 금메달 맛은 바로 "무지갯빛 솜사탕"이었다.

최미선은 언제나 덤덤하다. 그런 그에게도 금메달은 특별했다.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막내인만큼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가 주는 중압감과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경험은 그녀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개인전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못했다. 금메달의 맛을 물었더니 2002년 히딩크의 명언이 등장한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막내의 귀여운 도발에 언니들의 유쾌한 웃음이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올림픽을 앞두고 꾼 꿈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 끝나면 말씀드릴께요. 이런 건 미리 말하면 안된다고 했어요. 호호호."

▶개인전 앞둔 그녀들의 생각은?

장혜진은 "딱 오늘까지만 좋아하겠다"고 했다. 나흘 뒤인 12일, 개인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단체전 미션을 위해 온 힘을 모았던 그녀들. 이제 경쟁자로 흩어진다. 개인전은 또 다른 무대다. 2관왕은 엄청난 영예다. 김수녕-조운정-김경욱-윤미진-박성현으로 이어진 '신궁' 인증마크를 달기 위한 마침표다. 태극 여궁사들은 선의의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발톱을 숨기지 않았다.

사상 첫 2회 연속 2관왕을 노리는 기보배는 "욕심없다. 지금도 만족한다"면서도 "내일 당장 64강을 위해서 오늘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다. 일단 매 경기 후회없는 경기를 하는게 목표다. 속내도 반쯤 드러냈다. "우리 세명이 금은동을 땄으면 좋겠다." 손을 맞잡고 올랐던 가장 높은 무대. 이제 단 한명만 설 수 있다.

장혜진은 "이제부터 선의의 경쟁"이라고 했다. 평소대로 쏘는게 관건이라고 했다. "평소처럼 자신 있게 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당연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직 배가 고픈' 최미선도 "단체전처럼, 평소처럼"만 쏘면 된다고 했다.

누구든 상관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시상대 꼭대기에 서는 선수가 누가 됐든 모두 자기 일처럼 한 마음으로 기뻐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