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올림픽 데뷔전인 듯 했다. 1번 시드를 받아 승승장구했다. 명품 업어치기가 빛났다. 알고도 당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통한의 한판패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 막내 안바울(22·남양주시청)이 다 잡은 금메달을 놓쳤다. 그는 8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리카 아레나2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남자 유도 66㎏급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파비오 바실레(세계랭킹 26위)에 무릎을 꿇었다. 한 수 아래 상대였지만 올림픽 신은 세계랭킹 1위에게 금메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경기 시작 1분24초만에 상대 업어떨어뜨리기에 허를 찔렸다. 이번 대회 유도에서 나온 가장 큰 이변이었다.
4강에서 '숙적'이자 가장 어려운 상대였던 에비누마 마사시(일본·세계랭킹 6위)를 제압한 직후라 아쉬움은 더 컸다. 그는 이전까지 상대 전적 2전2패로 밀렸던 일본 유도 간판과의 맞대결에서 혈투 끝에 승리를 따냈다. 연장 시작 49초 만에 재빠른 되치기로 유효를 끌어냈다. 기술은 대등했지만, 체력에서 월등히 앞섰다.
에비누마는 4년 전 런던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조준호 대표팀 트레이너를 꺾었던 선수라 낯설지 않다. 당시 심판은 조 트레이너의 3-0 판정승을 선언했다가 곧장 판정을 뒤엎었다. 희대의 오심. 안바울이 선배이자 코치의 한을 풀어줬다. 사실상 결승전으로 평가받은 준결승에서 한국 유도의 자존심을 살렸다.
하지만 최후의 무대에서 '복병' 바실레에게 당했다.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수상 성적이 없는 하위 랭커의 반란이었다. 안바울도 경기 후 "열심히 했는데 한순간에 져서 허탈했다. (상대 선수의) 기술이 제대로 걸려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처음에는 져서 속상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다 실력"이라며 "다음에 더 노력해서 그 선수를 이기겠다"고 했다.
아쉬운 은메달이지만 한국 유도는 안바울의 월등한 기량만큼은 재확인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남자 경량급에서 그가 세계를 호령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특히 이제 스물 두살, 체급을 바꾼 지도 갓 2년이 지났을 뿐이다.
안바울은 원래 60㎏급 선수다. 2014년부터 66㎏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굳이 대표팀 선배 김원진(24·양주시청)과 경쟁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그 해 11월 제주 그랑프리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5년 유럽 오픈과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 2월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지난 5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마스터스에서도 정상에 섰다. 그는 체급 변경 뒤 출전한 9개 대회 중 5개 대회를 제패했다. 첫 출전한 올림픽도 결승까지 오르며 1인자 자리를 굳혔다.
그의 롤모델은 최민호 코치다. 최 코치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5판을 모두 한판승으로 장식하는 순간, 중3짜리 풋내기 소년은 그 모든 경기를 녹화했다. 그는 "아마 수백 번은 돌려본 것 같다. 그 기술을 익히려고 재생, 정지 버튼을 수없이 눌렀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주특기도 최민호 코치와 같은 업어치기. 안바울은 고교 시절 체급 구분이 없는 단체전에서 자신보다 30㎏ 무거운 선수를 한판승으로 제압하곤 했다.
다만 최 코치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맛은 덜 하다. 애초 공격 기술보다 방어 기술에 특출난 재능을 뽐냈던 그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올림픽 경험을 통해 기술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바울도 시상식 직후 "처음에는 져서 속상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올림픽은 축제다.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며 "4년 뒤 도쿄올림픽에도 나가기 위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 내가 운동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