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 브렛 필(32) 얘기가 나올 때마다 KIA 타이거즈 코칭스태프, 선수, 프런트가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성실'과 '겸손'이다. 성격이 온순해 좀처럼 흥분하지 않고,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중하며, 타이거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외국인 선수답지 않게 튀지 않고 편안하게 팀 속에 녹아드는 선수다.
지난 2014년 타이거즈에 입단한 필은 KBO리그에서 3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제 여러면에서 친숙해진 얼굴이 됐다. 지난해에는 프로 선수 출신인 아버지가 팬들의 환호속에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시구를 했다.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합류 직후에는 A4 용지에 한국어 인사말을 적어와 동료들 앞에서 읽었다. 그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기 위해 스프링캠프에서 열심히 하자"며 "애리조나 캠프 기간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했다. 동료들과 다시 만나게 된 반가움, 팀과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전한 것이다.
편한 이웃같은 외국인 선수 필이 KIA 팬들의 마음을 잡아 끈 일이 또 있다. 두 딸을 미국이 아닌 광주에서 낳았다. 2014년 7월 첫 첫째 딸 킨리(Kinley)를 광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낳은 필의 부인 칩씨(32)는 25일 같은 병원에서 둘째딸 랠린(Raelyn)을 출산했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며, 출산을 앞두고 미국에서 가족들이 건너왔다고 한다. 한국을 오가거나, 보통 출산 때 모국으로 건너가는 다른 외국인 선수 가족과 달랐다. 필은 구단을 통해 "출산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구단 관계자는 물론, 항상 응원해 주고 격려해 준 광주의 이웃주민들,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KIA 관계자는 "필 부부가 광주 생활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 외국에서 살다보면 여러가지 부딪히는 일이 많을텐데도 구단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했다.
아무리 인성이 좋고 팀에 잘 융화된다고 해도 외국인 선수가 갖춰야할 기본은 성적이다. 필의 가장 큰 장점은 꾸준함이다. 재계약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IA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겨울 잠시 주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올시즌 중심타자로 39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푼7리, 4홈런, 20타점. 5차례 도루를 시도해 4번을 성공한 게 눈에 띈다. 하지만 장타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털어내기 어렵다.
필은 기본적으로 한시즌 3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파워 히터가 아니다. 컨택트 능력이 좋은 중장거리 타자로 분류된다. 구단도 필에게서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급 홈런타자의 면모가 아닌, 꾸준한 팀 기여 능력을 봤다.
꾸준함을 높게 평가한다고 해도, 홈런에 대한 갈증은 있다. 필은 스프링캠프 기간에 이뤄진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점을 의식해 오프 시즌에 웨이트 트레이닝에 신경썼다고 했다.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KBO리그 첫해 92경기에서 19홈런-66타점을 기록한 필은 143경기 출전-22홈런-101타점으로 지난 시즌을 마쳤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해도, 5할대를 유지했던 지난 2년보다 올시즌 장타율이 소폭 하락했다. 지난 시즌에 비해 팀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었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영향 때문이었을까. 최근에는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대타로 나선 24일 삼성 라이온즈전까지 지난 10경기에서 홈런없이 타율 2할4푼2리, 1타점으로 주춤했다. 타격감 저하에 무릎까지 안 좋아 최근 2경기를 벤치에서 시작했다. KIA 코칭스태프는 휴식을 위한 배려였다고 했다.
많은 팬들이 지난 시즌 끝내기 홈런을 때리고 펄쩍 뛰던 필을 기억하고 있다.
대구=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