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큰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투수들이 가장 선망하는 보직, '선발투수'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짠!'하고 탄생하는 게 아니다. 긴 시간 동안 반복 연습을 통한 준비, 그리고 실전에서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쌓으면서 한 명의 선발이 완성된다. 선발이 되려면 얻어맞는 과정도 견뎌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화 이글스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확실한 경쟁력을 지닌 선발로 자리매김한 선수가 없다. 현재 1군 엔트리에 남아있는 선발 요원 중에서 그나마 이태양 정도가 한화에서 오랜 시간 키워온 인물일 뿐이다. 다른 선수들은 전부 필요에 따라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락가락하며 커리어를 채웠거나, 혹은 다른 팀에서 사온 선수들이다.
이같은 문제는 최근 1~2년 사이에 비롯된 게 아니다. 뿌리깊은 한화 구단의 고질적 문제로 봐야한다. 2006년에 혜성처럼 데뷔한 류현진 이후 10년간 한화에서 새롭게 키워낸 토종 10승 선발이 없다는 게 그 증거다. 지난해 안영명이 간신히 10승을 따내 2011년 류현진 이후 4년만에 한화의 토종 10승 투수 명맥을 이었지만, 안영명은 2003년에 입단한 13년차 베테랑이다.
또한 안영명 역시 입단 이후 꾸준히 선발요원으로 관리되고 기용되어오지 않았다. 부상 문제도 있었지만, 필요에 따라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채웠다. 이런 상황은 윤규진 송창식 장민재 김용주 김민우 등도 전부 겪어왔거나 현재 겪고 있다. 넥센에서 선발로 자리매김한 양 훈도 같은 경험을 했다. 결론적으로 지난 10년간, 한화의 투수 운용정책은 당장 눈앞의 1승만을 노리는 단기처방을 내리는 데 급급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은 비록 지더라도 1~2년 뒤를 내다보는 식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선발 투수를 키워내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토종 선발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당장의 5연패, 10연패보다 심지어 시즌을 꼴찌로 마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당장 써야할 선수와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선수를 구분하고, 미래에 팀의 기둥 선발로 키워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경험의 무대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전면적 리빌딩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선발 육성 프로젝트'는 지금이라도 가동해야 한다.
재목들은 꽤 쌓여있다. 프로 2년차 김민우는 재활을 마치면 다시 건재하게 마운드에 설 수 있다. 시범경기에서 가능성을 보인 김재영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통해 자신감을 되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군복무 제대 후 스프링캠프를 통해 기량이 일취월장한 장민재도 불펜에만 한정해두기는 아깝다. 지난해 후반에 상무에서 제대한 김용주는 팀에 부족한 좌완 선발 자원이다. 이런 젊은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어차피 지금의 한화에 '상위권 도약'이나 '우승'을 바라는 건 사치다. 그런 말을 내세우는 건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 최하위에서 벗어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렇다면 '내일에 관한 희망을 주는 야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래의 선발감들이 어떻게든 5이닝씩은 버티면서(또는 벤치가 5이닝까지 참아주면서) 진다고 해도, 이건 팬들 입장에서는 '납득 가능한' 패배일 수 있다. 그래서 10연패를 하더라도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우선은 선발의 씨앗을 뿌리는 게 필요할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