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올시즌이 참담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잠시 볕이 드는가 하더니 또다시 암흑 터널이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14일 현재 9승25패(승률 0.265). 홀로 마라도 마냥 떨어져 있는 꼴찌. 올라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최근 들어 경기력은 더 형편없다.
합류하기만 하면 팀 전체를 바꿔줄 것만 같았던 구세주 로저스는 2경기에서 2패를 안았다. 평균자책점(5.25)보다 경기 내용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구위도 나쁘지 않다는 점을 알지만 혜성같던 지난해 모습은 아니다. 김성근 감독은 허리 디스크 수술로 입원중이고, 한화 이글스 구성원 누구도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요즘 한화 경기를 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한화의 올시즌 최종 목표다. 꼴찌 탈출 면피인가, 지난해 수준(6위)인가, 가을야구인가, 우승인가.
한화는 지난 11일 NC를 상대로 6대5 승리를 따냈다. 6연패를 끊었던 순간이다. 당시 한화는 선발 이태양이 4이닝을 던지고 박정진-윤규진-권혁-송창식-정우람이 연이어 나왔다. 문제는 필승조를 총동원한 다음 경기다. 12일 NC에 1대12로 완패당한 뒤 또다시 3연패다. 14일 KIA전에서는 KIA 선발 헥터에게 5안타 완봉패까지 당했다.
이것이 한화의 현실이다. 연패를 끊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다음도 수렁이다. 올시즌 이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일정기간 5승1패로 반등하기도 했지만 뿌리없는 나무가 버티지 못하고,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금방 전력이 동났다.
요즘 타구단 사령탑도 한화 얘기를 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선후배, 사제지간인 야구판에서 대놓고 적나라한 얘기는 못한다. 정곡을 찌른 다음에도 서둘러 "익명으로 해달라"거나 "기사화할 얘기는 아니다"며 손사래 친다.
A감독은 최근 한화 얘기중 연패탈출법에 대해 얘기했다. "연패에 빠지면 첫번째는 기다려야 한다. 미리 연패를 끊기위해 무리수를 두면 다음 경기, 그 다음 경기로 데미지가 이어진다. 오히려 연패가 길어질 수 있고, 다행스럽게 연패를 끊어도 금방 또 연패에 빠진다. 연패에 빠졌을 때는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야구인 B씨는 한화가 처한 형국을 화투놀이인 '고스톱'에 비유하기도 했다. 고스톱은 점수가 났을 때 '고, 스톱'을 외치기도 하지만 4명 이상이 게임을 하면 자신의 패를 본뒤 칠것인지, 말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돈을 잃은 이는 화가 나 손에 든 패가 좋지 않아도 무조건 '고'를 외치는 경우가 많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 줄어든다. 반대로 돈을 딴 쪽은 패가 좋지 않으면 죽고, 좋은 패가 들어올때만 승부에 참가하기 때문에 승률이 더 좋아진다. 더욱이 남은 판이 얼마 없다면 잃은 이의 판단은 더욱 흐려질 수 밖에 없다.
지난 12일 NC전에서 한화 벤치는 선발자원 마에스트리를 중간에 투입했다. 자충수로 끝났다. 한화는 1대12로 졌다. 마에스트리가 선발로 미덥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마운드 운용의 속내는 밖에서 보면 모르는 구석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없는 임시땜질식 마운드 운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에는 한화보다 더한 팀이 있다. 박병호의 소속팀인 미네소타다. 14일 현재 8승26패다. 14일 박병호는 연타석홈런으로 시즌 9호를 신고했는데 팀은 8연패에 빠졌다. 미네소타 타선은 최근 변동이 있다. 벤치가 뭔가 해보려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납득하기 힘든 혹사나 이해하기 힘든 선수기용은 없다.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팬들의 아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네소타 덕아웃에도 패배시엔 무거운 침묵 뒤 울분을 토하는 선수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무리수를 두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KBO리그는 이미 글로벌 야구문화권의 일원이다. WBC와 프리미어12(초대우승) 등 국제대회 출전 뿐만 아니라 국내야구 영상이 유튜브와 외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국내 외국인선수의 몸값이 뛰면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도 KBO리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 코치연수를 다녀온 최희섭은 "한국야구에 대해 물어오는 선수들이 많이 늘었다"며 놀라워했다. 대놓고 뛰고 싶다는 말을 하는 선수도 꽤 있다고 했다.
국내 선수들도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일본프로야구를 자주 본다. 한화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선수들도 메이저리그 출신이고, 정근우 이용규 등 국가대표 출신들은 국제대회도 많이 뛰었다. 이들이 덕아웃에 앉아서 소속팀 벤치, 특히 김성간 감독의 선수기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를 떠올리면 답답해진다. 여기는 한국이고, 수년간 최하위였던 한화는 특수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해도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이다. 이상한 것보다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 나아가 멋진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생사 기본 가치다.
순리대로 풀어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과정에서 얻는 교훈도 결과못지 않은 뿌듯함이 있다. 쫓기듯 무리수만 두면 더 깊은 나락에 빠질 수 있다. 어찌보면 한화는 지난해 후반기 침체가 올시즌까지 이어졌다고도 볼 수있다. 지난해 미리 당겨 쓴 전력은 144경기를 버티지 못했고 그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리빌딩을 시작한다고 해도 곧바로 암흑기가 오는 것도 아니다. 넥센은 리빌딩과 함께 선전하고 있고, LG도 체질개선을 선언한 뒤 제법 잘 버티는 중이다. 지금 좀 덥다고 해서 옷을 마구 벗어던지고 팔아버릴 일이 아니다.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온다.
선발이 없다고 한탄하는 한화지만 다른 팀이라고 해서 축구선수를 돈으로 사서 선발투수로 만든 것이 아니다. 발굴하고 키웠다. 꽤 오랜세월 참고 기다렸다. 한화도 늦지 않았다. 시즌 중 B플랜, 리빌딩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한화가 올해 가을야구를 하고, 우승에 도전하는 것은 5% 미만의 가능성을 쫓는 도박이다. 숱한 희망고문 뒤 참담함은 더욱 쓰다.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