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 삼성 감독이 라인업을 짤때 절대 고민하지 않는 자리가 있다. 4번 최형우(33)다. 2011년 최형우를 전경기 4번에 고정시켰고, 2012년 잠시를 제외하곤 한결같았다.
최형우가 라이온즈 4번타자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들어 프로야구 타순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장타력 갖춘 1번, 가장 믿을만한 3번, 타점력 넘치는 6번 등 고정관념은 흔들린다. 하지만 4번이 갖는 상징성은 여전하다. 중심이 강해야 타선이 함께 살아난다.
최형우는 지난 9년간 삼성의 4번 터줏대감이었다. 장효조-양준혁-이승엽의 뒤를 잇는 전통 삼성 좌타자 계보와 단순 비교하면 화려함은 약간 덜할지 모르나 영양가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최형우는 올해 스타에서 슈퍼스타로 거듭날 태세다.
최형우는 지난 14일 롯데전에서 이성민을 상대로 중월 2점홈런을 터뜨렸다. 전날 만루홈런을 치고도 패했던 터라 홈런도 치고 팀도 10대4로 승리해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시즌 10호. 최형우의 9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이다. 올시즌 최형우는 나무랄 데 없는 4번 타자다. 타율 0.359(4위) 47안타(4위) 2루타 11개(2위) 10홈런(2위) 39타점(2위). 득점권 타율은 무려 4할(전체 7위)에 이른다. 득점권 타율 1위는 롯데 강민호로 0.522다.
4번이 강하면 타선은 달라진다. 올시즌 4번타자를 전경기에 고정시킨 팀은 최형우의 삼성과 정의윤의 SK, 테임즈의 NC 세팀 밖에 없다. 두산 에반스는 부끄러운 4번이고, 롯데 최준석도 전경기는 아니었다. 넥센 대니돈은 타율이 낮고(0.222, 7홈런), 한화 김태균은 홈런이 1개밖에 안된다. 김태균은 10개구단 최소홈런 4번 타자다. KIA 나지완과 LG 이병규, kt 유한준도 잘해주고 있지만 터줏대감 느낌은 아니다.
최형우에게 4번은 어느새 잘 차려입은 맞춤복같다. 4번은 스포트라이트만큼이나 부담을 주는 자리다. 4번에 놓기만 하면 흔들리는 선수도 있다.
최형우는 알려진 대로 늦깎이 스타다. 2002년 삼성의 2차 6순위(전체 48순위)로 입단했다. 포수였고, 타격에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성적부진으로 방출. 상무마저 지원단계에서 탈락했다. 그해 경찰청이 창단되면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다. 경찰청(군복무)에서 외야수로 전향했다. 제대후 2008년 삼성에 다시 입단했다. 2008년 입단 7년만에 신인왕에 올랐고, 이후 삼성의 4번은 최형우였다.
여러가지 장점이 많다. 지난해 144경기를 뛴 것을 비롯해 매년 풀타임에 가까운 경기를 소화하는 강철 체력에 수비도 빠지지 않는다. 정교함과 파워를 겸비하고 있고, 다양한 구질에 대처하는 타격기술은 국내 정상급이다.
최형우의 올시즌 홈런 페이스는 41.2개다. 개인통산 한시즌 최다홈런은 지난해 33개다. 타율과 타점 모두 개인최고기록 경신 기대를 높이고 있다. 최형우는 올시즌이 끝나면 FA가 된다. 철저한 자기관리, 중압감을 이겨내는 강한 멘탈, 타고난 강철 체력 등은 몸값을 높일 수 있는 플러스 요인이다. 본인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대어급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올시즌 활약 정도에 따라 FA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도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