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크루이프는 특별했다.
"크루이프가 마음만 먹었다면 경기장의 어떤 포지션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는 에릭 칸토나의 말처럼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선수였다. 탁월한 축구센스와 현란한 기술, 폭발적인 스피드와 천리안 같은 시야, 공수를 넘나드는 기동력까지, 크루이프는 항상 경기를 지배했다. "크루이프가 더 뛰어난 선수다. 하지만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은 나다"는 1974년 서독월드컵 우승 후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말처럼 그는 레전드들이 인정하는 레전드였다.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아약스와 바르셀로나 등 클럽 레벨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세 차례나 수상했던 선수였다.
요한 크루이프는 혁명가였다.
"크루이프가 없다면 내겐 팀이 없는 것"이라는 리누스 미셸의 말처럼 그는 토탈사커 그 자체였다. 현대축구의 기본인 '전원공격-전원수비의' 토탈사커는 미셸 감독의 지략을 그라운드에서 구현한 크루이프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다. "이 대성당을 지은 것은 크루이프다. 우리의 역할은 이것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이다"는 호세 과르디올라의 말처럼 '소유와 생각'을 강조한 크루이프의 철학은 현대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크루이프즘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당대 최강' 바르셀로나 축구의 씨앗은 크루이프가 뿌렸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과르디올라, 사비 에르난데스, 그리고 리오넬 메시를 보지 못할 뻔했다.
요한 크루이프가 세상을 떠났다.
24일(이하 한국시각)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2의 고향'이었던 바르셀로나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아들에게 카탈루냐 성인의 이름을 붙여줬을 정도로 바르셀로나를 사랑했다. 원인은 폐암이었다. 지난해 10월 스페인 언론의 보도로 폐암 투병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암과의 대결에서 2대0으로 앞서 있다"고 했지만 결국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68세에 눈을 감았다. 어릴 적부터 흡연을 시작한 크루이프는 하프타임 때도 담배를 피웠던 '애연가'였다. 1991년 심장수술을 받고난 후 담배를 끊었지만 오랫동안, 너무나도 많이 피웠던 담배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요한 크루이프의 타계 소식에 전세계가 슬퍼했다.
'축구황제' 펠레는 "위대한 사람을 잃었다"고 말했다.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 역시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애도했다. 메시는 SNS를 통해 '크루이프는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영원할 것'이라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축구계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고 전했다. 26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평가전에서 관중들은 전반 14분까지 침묵을 지켰다. 14분은 크루이프의 등번호를 의미했다. 14분 후 경기가 잠시 중단되자 관중석에서 크루이프의 대형 현수막을 펼쳐졌다. 양 팀 선수들이 승부를 잠시 잊고 기립박수를 쳤다. 네덜란드 선수들의 유니폼 오른쪽 소매에는 14번이 새겨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후반 43분 결승골을 넣은 프랑스 블레이즈 마투이디의 등번호는 '14번'이었다. 마이클 반 프락 네덜란드 축구협회장은 암스테르담 아레나를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로 명칭을 변경하자고 제안했고, 바르셀로나 팬들은 누캄프 증축에 발맞춰 경기장 명칭에 크루이프를 넣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한 크루이프는 많은 유산을 남겼다.
"축구는 쉽다. 하지만 축구를 쉽게 하는 것은 가장 어렵다." "나에게 골키퍼는 첫 번째 공격수고, 공격수는 첫 번째 수비수다." "축구는 두 다리가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게임." "공은 하나 뿐이다. 공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크루이프가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하며 남긴 수많은 발언들이다. 모두 현대축구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 저마다 축구에 대한 이해와 접근법은 다를 수 있지만, 본질은 크루이프의 철학에서 출발한다. 크루이프가 단순한 레전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그의 분신인 토탈사커, 최초의 11번 밖 등번호인 14번, 최초의 200만달러 이적료, 그의 이름을 딴 기술 크루이프턴, 그가 만든 바르셀로나의 유스시스템 라마시아 등. 그는 축구계에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해야 될 것은 '승리' 보다 '아름다움'이란 축구의 본질을 찾았던 그의 정신이다. '독설가'로 유명했던 크루이프는 생각해보면 축구가 제대로 가고 있을때에만 쓴소리를 보냈다. "이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는 것과 그것을 따라 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가지는 일. 이것이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크루이프의 유산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