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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전성시대, '기적'이 아닌 '실력'으로 일군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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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이 V리그 전성시대를 열었다.

OK저축은행은 24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벌어진 현대캐피탈과의 2015~2016시즌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1(25-20, 25-15, 19-25, 25-23)로 승리를 거뒀다.

적지인 천안에서 2연승을 거둔 OK저축은행은 22일 안방에서 열린 3차전에서 역전패를 당했지만 4차전을 잡아내면서 2014~2015시즌에 이어 V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V리그를 떠나게 된 시몬은 챔프전 MVP에 선정됐다.

해프닝도 있었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우승을 결정짓자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다가 바지가 찢어져 선수들의 헹가래를 늦게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V2' 달성 비결

비결은 '신뢰'와 '믿음'이었다.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디펜딩챔피언이라는 꼬리표는 영광인 동시에 부담이었다. 모든 팀의 견제대상이 됐다. 선수단을 짓누르는 압박감도 배가 됐다. 그래서일까. 유독 주전급들이 줄부상을 했다. 연이은 주전급 이탈로 OK저축은행이 비틀거렸다. 리그 후반 들어 힘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가 아니면 잇몸으로 싸워야 했다. 이 때 발휘된 것이 선수단에 깊숙이 자리한 신뢰와 믿음이 버팀목이었다. OK저축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화재를 2연승으로 손쉽게 제압했다. 실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때리는 강서브가 주효했다. "챔프전에서도 우리 스타일대로 갈 것이다." 김 감독의 출사표였다. 선수들이 김 감독의 믿음과 신뢰에 부응했다. 거침이 없었다. 범실을 공격으로 만회했다. 어려운 시간을 거치며 다져진 믿음은 OK저축은행을 하나로 만들었다.

▶낮은 자세로 정상 찍은 '관리자' 김세진 감독

올 시즌을 앞두고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창단 2년 만의 V리그 정상에 선 것을 '운'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팀은 정상권 팀이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릎 수술을 한 '공격의 핵' 시몬이 돌아올 때까지 버텨줄 외국인 공격수를 찾지 못했다. 또 연습 경기조차 하지 못했다. '겸손'은 핑계가 아닌 김 감독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한 단어였다. 예상대로 우여곡절의 시즌이었다. 1라운드가 끝나자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다. 4라운드에선 3연패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또 5라운드 막판에는 주전 세터 이민규마저 쓰러졌다. 그러나 고비가 닥칠 때마다 김 감독의 '관리자' 능력이 빛을 발했다. 선수들의 몸 상태에 따라 훈련을 유연하게 조절했다. 특히 김 감독은 '밀당의 귀재'였다. 분위기에 따라 경기력 기복이 큰 젊은 피들의 심리를 장악했다. 김 감독이 이번 시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민규 부상 이후 팀을 책임져야 했던 백업 세터 곽명우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이 택한 것은 '믿음'이었다. 감독의 믿음에 곽명우는 춤을 췄다. 20일 챔프전 2차전에선 공격수들에게 자로 잰 듯한 토스를 배달했다. 프로 3년차 사령탑인 김 감독은 이번 시즌 지략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최태웅표 스피드배구'로 정규리그를 삼킨 현대캐피탈의 보이지 않는 빈틈을 파고들었다. 주포 오레올을 서브 타깃으로 삼아 철저하게 공격 빈도를 줄였고 현대캐피탈보다 더 빠른 플레이로 '원조 스피드배구' 팀임을 증명했다. 4차전에선 더블 리베로 전략으로 수비의 안정을 꾀했다. 범실이 늘어날 때는 공격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게 주문했다.

▶'굿바이' 시몬, 그가 남긴 유산은 V리그 역사다

시몬은 올 시즌 전 좋지 않은 무릎에 결국 칼을 대야 했다. 시즌 초반 결장이 예상됐다. 그러나 시몬은 빠른 재활로 2015~2016시즌 개막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트리플크라운(후위, 서브, 블로킹 3개 이상 달성) 제조기였다. 정규리그에서 9차례를 작성했다. 삼성화재의 '독일산 폭격기' 괴르기 그로저보다 3차례 더 많은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다. 10번째 트리플크라운은 지난 12일 달성했다. 지난 시즌보다 2배가 많은 횟수였다. 시몬은 이번 시즌에도 공격성공률 2위(56.05%), 속공 1위(67.88%), 퀵오픈 1위(68.31%), 블로킹 1위(세트당 0.742개), 서브 2위(세트당 0.636개)를 기록했다. 시몬은 두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152개의 서브를 성공시켰다. 또 공격 득점도 1500점을 돌파했다.

시몬이 다른 외인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인성이다. 시몬은 분위기에 따라 경기력 편차가 컸던 젊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다잡아줬다. 특히 시몬을 통해 교육 효과가 나타났다. 선수들은 세계 최고 선수의 몸 관리법과 배구를 대하는 자세, 승부욕 등 많은 부분을 보고 배웠다. 코트 안팎에서 솔선수범하던 시몬은 송명근 송희채 이민규 등 젊은 선수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또 코치 경력없이 곧바로 프로 팀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에게도 깍듯하게 대했다. 경기가 끝나면 김 감독에게 허리를 굽혀 90도로 인사하는 예의범절도 갖췄다. 이런 인성을 일찌감치 파악했던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시몬을 주장으로 임명하려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시몬이 남긴 유산은 곧 V리그의 역사였다.

안산=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