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팀인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 입장에서는 분명 기분 나쁜 패배였다. 상대인 리버풀은 한 명이 퇴장한 상태였다. 후반 27분까지 이기고 있었다. 골키퍼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동점골을 헌납했다. 경기 종료 직전 석연찮은 페널티킥이 나왔다. 결국 크리스탈 팰리스는 리버풀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9라운드 홈경기에서 1대2로 졌다.
경기 후 셀허스트파크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평온했다. 몇 차례 야유는 나오기는 했다. 그래도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은 조용히 그리고 재빠르게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이들 중 일부 팬들이 향한 곳이 있었다. M게이트 앞이었다.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크리스탈팰리스 팬들은 빠르게 버스를 둘러쌌다. 리버풀 선수단이 타고 집으로 갈 버스였다.
20여분이 지났을 즈음 선수들이 나왔다. 야유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전혀 딴판이었다. 다들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박수쳤다. 특히 다니엘 스터리지나 마마두 사코 등 스타 선수들이 나올 때 팬들의 소리는 커졌다. 사진도 찍고 사인도 요구했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이 나오자 함성 소리는 더욱 커졌다. 클롭 감독은 살짝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한 팬은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들고 독일말로 클롭 감독을 부르기도 했다.
의아했다. 리버풀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팀을 패배로 몰아넣은 원흉이다. 그럼에도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자리에 있던 팬에게 물었다. "상대팀이기는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타들이다"면서 "1년에 한 번 이들이 원정 올 때만 실물을 볼 수 있다. 둘도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해가 됐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EPL내에서 중소팀이다. 물론 팀 내에 마일 예디낙이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야닉 볼라시나 윌프레드 자하 등 스타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이날 원정 온 리버풀을 비롯해 맨시티, 첼시, 맨유 등 빅클럽 소속 선수들에 비하면 다소 이름값이 떨어진다.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로서는 이런 날이 1년에 한두번 있을까말까한 빅스타들 직관(직접 관전의 줄임말) 기회다. 때문에 유니폼이나 사인지를 들고 목이 터져라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렇다면 정작 그 시간 승리한 리버풀 팬들은 어디 있었을까. 그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웠다. 홈팬들과의 충돌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노우드정션역 앞 펍을 점령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리버풀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이들앞을 지나갔다. 펍에 있던 리버풀 팬들은 일제히 달려나왔다.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런던=이 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 bbadag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