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시청자를 1392년, 개경 선죽교로 초대한 '육룡이 나르샤'. 천년간 회자할 명장면이 탄생됐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김영현·박상연 극본, 신경수 연출) 36회에서는 포은 정몽주(김의성)의 마지막인 선죽교 비극이 그려졌다.
정도전(김명민)의 사형이 결정되고 이성계(천호진)의 사람들 역시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이방원은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바로 정몽주를 죽이는 것.
이방원은 심복 조영규(민성욱)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는 정몽주를 막아서며 "날이 밝으면 삼봉(정도전) 스승님과 저의 인사들을 처형하실 겁니까? 도저히 이 나라 포기가 안 되십니까?"라며 마지막으로 정몽주를 설득했다. 이에 정몽주는 "내가 나고 자란 나라다. 나와 내 가족과 내 동문들을 길러낸 땅을, 사직을 등진다면 어찌 유자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직 고려 사직만을 생각하는 정몽주를 향해 이방원은 "일전 저에게 백성을 팔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여 저는 다시 백성들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헌데 백성들은 말입니다. 실은 사직이 어찌 되든 연연치 않더이다. 백성들에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포은 선생께서 사직을 지키든, 삼봉 스승님께서 건국을 하든 그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백성에게 오직 밥과 사는 기쁨, 이거면 되는 것이지요"라고 절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이방원은 마침내 "저 만수산이 칡넝쿨이 저리 얽혀있다 한들 그것을 탓하는 이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포은 선생과 삼봉 스승, 두 분이 저리 얽혀 손을 맞잡고 백성들에게 생생지락(백성이 삶을 즐거워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면 선생께서 그리 중시하는 역사에 누가 감히 하찮은 붓끝으로 선생을 욕보이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며 '하여가'를 읊었다.
이방원의 '하여가'를 곱씹는 정몽주는 "백성이라, 생생지락이라. 잘 듣게나 유자는 백성을 쫓는 것이 아니네. 백성을 품고 오직 이끌어야 하는 것이야. 품기 위하여 사직이 필요한 것이고 그를 향한 유자의 마음을 충이라 부른다네. 그 충을 버린다면 마음 안에 백성도 사라지는 것이야"라며 "이보게, 이성계 장군과 삼봉, 자네들이 어찌한다 해도 단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려와 100근 조금 넘는 이 몸뚱어리 뿐이라네. 나를 죽이고 죽여 일백 번을 죽여 보시게. 백골이 다 썩어 나가고 몸뚱어리가 흙이 되어 먼지가 된다 한들 이 몸 안에 있었던 한 조각 충을 향한 붉은 마음은 일편단심 가지지 못할 것이네"라며 '단심가'로 자신의 대답을 대신했다.
대쪽같은 대나무 그 자체인 정몽주의 심정에 이방원은 "그 마음 가상하십니다. 뜻 알겠습니다. 스승님"이라며 한탄의 눈물을 흘렸고 이때 정몽주는 "자네가 가질 것이 하나가 있긴 하네. 천년의 악명. 자네는 이 정몽주라는 이름과 내일 아침부터 천년 동안 얽혀 기록되고 회자될 것이야. 잘 감내해 보시게"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천년의 악명'이란 저주를 퍼부은 정몽주를 향해 섬뜩한 살기를 띤 이방원은 "그리하지요. 선생과 현생에 얽힐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기나긴 역사에 천년만년 선생과 얽혀 누려 보겠습니다"라며 조영규(민성욱)에게 정몽주의 피살을 지시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정몽주는 '삼봉 자네 말대로 됐군. 고려의 천년대길을 위해 이 목숨을 바치려 했건만 이 나라는 끝이 나고 내가 천년을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라는 속마음을 건네며 선죽교 위에 피 칠갑이 돼 쓰러졌다.
역사적 사건인 선죽교의 비극은 유아인, 김의성에 의해 새롭게 그려졌다. 순도 100% 감정을 대사에 녹여낸 유아인의 '하여가', 김의성의 '단심가'는 그 어떤 사극에서도 본 적 없는 진기한 명장면을 만들었다.
이방원과 정몽주의 두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피 칠갑이 돼 선죽교 위에서 쓰러진 정몽주,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는 이방원까지. 약 10분간 펼쳐진 선죽교의 비극은 소름을 넘어 전율을 감돌게 했다. 마치 1939년 선죽교의 이방원과 정몽주를 그대로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 전율의 10분. 천 년간 회자 되도 모자랄, 사극 사상 최고의 해석을 펼쳐낸 '육룡이 나르샤' 선죽교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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