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배우 유연석은 '수식어 부자'다. '응답하라 1994'에선 로맨틱한 '밀크남'이었고, '꽃보다 청춘'에선 친구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엄마 같은 모습에 '연석맘'이라 불렸다. 그의 탄탄한 몸매와 남성미는 '어깨깡패'라고 표현됐다. 작품 안에서 그만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기에 가질 수 있는 수식어들이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선 '맹공남'이다.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 당장 철창에 갇힌다 해도 억울할 것 없는, 아슬아슬한 수위의 말도 마치 일상적인 안부인사처럼 건네는 남자다. 멜로 연기 경험이 많은 유연석에게도 '낯설게' 다가온 캐릭터. "실제 저라면 저런 말은 절대 못하죠. 이렇게 적극적인 인물은 처음이라, 연기할 때 꽤 신선했어요. 한번도 보여드린 적 없는 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부산행 KTX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하룻밤 로맨스.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자유연애주의' 남자와 10년간 한 남자와 지지부진한 연애를 이어온 '일편단심' 여자가 하룻밤을 계기로 진실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발랄하게 펼쳐진다. 유연석의 설명에 따르면, '비포 선라이즈' 같은 시작이지만, 전체적인 톤은 '연애의 목적'에 가까운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다.
유연석은 이 영화 시나리오에서 '날 것의 신선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촬영을 앞두고 다시 받은 수정 시나리오에선 그 느낌이 반감돼 아쉬웠다. "저도 시나리오 작업에 동참하고 싶다고 감독님께 부탁드렸어요. 배우의 해석을 존중해주시는 분이라 흔쾌히 동의해주셨죠. 괜찮은 에피소드는 되살리고, 몇몇 장면의 대사들은 새로 만들었어요."
유연석의 제안으로 탄생한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남녀주인공이 기차역에서 재회하는 엔딩신이다.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 장황한 설명 없이도 둘 사이의 오해는 이 한마디 말에 스르르 풀린다. 상대역 문채원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꽤나 공을 들여 촬영했다. 현장 분위기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유연석과 그 반대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추구하는 문채원은 마치 영화 속 맹공남과 철벽녀처럼 '밀당'하듯 연기 호흡을 맞추며 영화를 만들어갔다. "연기 스타일의 차이가 캐릭터에도 반영된 덕분에 영화에서도 둘 사이의 밀고 당기는 느낌이 잘 살아난 것 같아요."
유연석은 좀처럼 쉬지 않는다. '그날의 분위기'를 개봉하기 이전 1년 동안 영화 '은밀한 유혹'와 '뷰티인사이드', 드라마 '맨도롱 또f'을 선보였고, 영화 '해어화' 촬영을 마쳤다. '그날의 분위기' 홍보활동과 동시에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공연도 하고 있다. 충무로에서 이경영, 배성우 다음 가는 '다작배우'라는 칭찬 섞인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올드보이' 이후로 출연작이 벌써 30편 넘더라고요.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하나의 이미지에 갇히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경력에 비해 필모그래피가 다양한 편이죠.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조금 낯설고 어렵더라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를 넘어서는 캐릭터도 만날 수 있겠죠. 가깝게는 '그날의 분위기'가 그런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
유연석은 연기도 인생경험이라 생각한다. 또한 인생경험은 연기에 담긴다. 평소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그는 카메라 밖에서도 인생경험을 쌓느라 분주하다. 후배들에게 매체 연기를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쁜 스케줄에도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포르투갈 여행 중 알게 된 그 지역 와인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태원에 조그마한 라운지바도 차렸다. 2월 14일 뮤지컬 공연이 막을 내리면 일본 훗카이도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배우 유연석으로도, 자연인 유연석으로도,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 경험이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잖아요. 연기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표현하는 일이고, 영화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죠.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나 봐요."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