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는 내로라 하는 외국인 선수들의 경연장이었다.
피아퐁부터 아드리아노까지 이어져 온 외국인 계보는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30년이 넘는 역사에서 회자되는 외국인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력 극대화를 위한 '히든카드'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대로 '퇴출 통보'를 받아야 하는 게 외국인 선수의 운명이다.
이런 환경은 마케도니아 출신 공격수 스테보(34)가 '한국형 외국인 선수'라는 타이틀을 붙게 했다. 2007년 전북에 입단한 뒤 8년을 K리그에서 보냈다. 2008년 포항, 2011년 수원에 이어 2014년 전남으로 이적하기까지 4팀을 거치는 동안 통산 212경기 82골-28도움을 기록했다. 2도움만 더 기록하면 30-30클럽에 가입한다. 18골을 보태면 100호골의 위업을 쓴다. 역대 외국인 선수 중 100골을 넘긴 선수는 데얀(FC서울)과 샤샤(성남 일화) 뿐이다. 기량 뿐만 아니라 팀워크와 운이 수반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기록이다.
올 시즌 전남에서 스테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친동생처럼 자신을 따르던 '빅 앤 스몰'의 한 축인 이종호가 전북 현대로 이적했다. 배천석 조석재가 입단했으나 빠른 팀 적응 여부가 관건이다. 2선에서 도우미 역할을 해줬던 레안드리뉴 대신 유고비치가 가세했으나 실전 검증이 필요하다. 노상래 전남 감독 입장에선 시즌 초반 '믿을맨'인 스테보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팀을 위해서라면 누가 그라운드에 나서서 골을 넣어도 상관 없다."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외국인 선수 입장에선 쉽게 나올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스테보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욕심을 부려선 안된다. 팀이 승리하기 위해선 최고의 조합을 찾아야 하고 결정은 감독의 몫이다." 그러면서 "배천석이라는 좋은 공격 옵션이 생긴 것은 우리 팀에게 좋은 일이다. (이)종호가 떠난 것은 아쉽지만 (조)석재라는 좋은 동생이 생겼다"고 껄껄 웃었다.
공격수 치고는 적지 않은 나이다. 여전히 위력적인 기량을 지닌 스테보지만 외국인 공격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 K리그를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매 시즌을 준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스테보는 "오랜 기간 생활한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나만의 플레이 스타일이 있고 체력도 자신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면서 "'한국형 외국인 공격수'라는 말이 참 좋다. 언젠가 내가 떠나더라도 팬들에겐 '투쟁적이면서도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광양=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