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재채기와 사랑은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영화 안에서 깊은 사랑을 하고, 실제 삶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김하늘의 얼굴은 감춰지지 않는 생기로 충만했다.
김하늘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기억을 잃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 감당하기 힘든 비밀과 마주해야 하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김하늘은 "힘들고 아파도 오직 사랑 하나만 바라봤다"고 했다. 문득, 이 영화가 지금의 김하늘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스쳤다.
시나리오부터 김하늘은 이 영화에 푹 빠졌다. 단숨에 읽고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가 저를 덮쳐오는 듯한 느낌이었고, 금세 그 분위기에 젖어버렸어요."
극의 전개는 기존의 멜로 공식을 벗어나고, 숨겨진 미스터리는 꽤 묵직하다. "정우성 선배를 남자 주인공 석원에 대입해 읽었더니, 이야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제가 여자 주인공 진영의 자리에 들어갔을 때, 두 캐릭터가 어떻게 어우러질까 궁금해지더군요. 마음으로 먼저 와닿은 것 같아요."
극중 석원과 진영의 첫 만남은 병원에서 이뤄진다.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진영의 모습에 석원은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김하늘의 첫 촬영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님께 그 장면을 중후반 촬영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어요.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어려운 걸 끝내 놓아야 편하다는 말에 설득당하긴 했지만, 너무 많이 울어서 나중엔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얼굴이 푸석해 보이는 건 아쉽지만(웃음) 결과는 만족해요."
아주 작은 표현 하나도 조심스러웠다. 눈빛이나 시선의 미묘한 차이 하나로도 감정의 결이 달라지는 탓이다. "갑자기 남자 앞에 나타난 여자가 관객들에겐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감정기복도 심하고요. 석원이 한눈에 반해야 하는데, 진영의 호감도가 떨어지면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매 순간 연기가 어려웠어요."
캐릭터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를 아끼고 사랑했다는 의미일 테다. 마지막 촬영 날, 김하늘은 많이 울었다. 안쓰러워서 자꾸만 안아주고 싶었던 진영 캐릭터와 헤어져야 해서, 그런 진영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석원을 떠나보내야 해서, 그리고 행복했던 촬영 현장과 작별해야 해서…. "촬영 하는 동안 아주 많이 즐거웠어요.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 정도로요." 이 영화의 제작도 겸한 정우성은 김하늘이 '날씨가 덥다'고 무심코 얘기한 것을 기억했다가 시원한 음료를 챙겨줄 정도로 배려가 남달랐다. 김하늘은 "정우성 선배는 진짜 로맨티시스트"라며 활짝 웃었다.
영화를 찍을 때도 그랬지만 완성된 영화를 본 뒤에 김하늘은 더욱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가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한다. "남녀관계, 부부관계, 인간관계, 친구관계 같은 사람과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제가 그런 시기이기도 하고요. 나이가 조금 들고 중요한 사람이 생기니까, 내 감정을 표현하기 이전에 상대를 먼저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관계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방법이란 걸 알 것 같아요."
김하늘이 말한 '그런 시기'와 '중요한 사람'을 더하면 바로 '결혼'이다. 예비신부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쑥스럽다"며 웃었다. "일도 가정도 제겐 똑같이 소중해요. 아마 결혼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거예요. 오히려 좀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많이 편해졌어요.(웃음)"
스무살 무렵 연기를 시작해 어느 덧 연기 경력이 20년에 가까워졌다. 인생의 2막을 앞두고, 김하늘은 지난 시간을 잠시 돌이켰다. "예전엔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저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바빴어요. 어쩌면 조금 이기적으로 보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주변을 많이 돌아보게 됐죠.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과 함께 저도 성장해 온 것 같아요. 여유로워진 제 자신을 볼 때, 조금은 성숙해졌구나 싶어요."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