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조금 빠른 감이 있지만 충분히 예견된 시나리오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결국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 경질 카드를 꺼냈다. 플로렌티노 페레즈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5일(이하 한국시각)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베니테스 감독과 계약을 종료한다. 그동안 최선을 다한 베니테스 감독에 감사함을 표한다"고 전했다. 올 시즌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은 베니테스 감독은 6개월만에 성적 부진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베니테스 감독은 수비축구 논란과 선수단 불화 속에 날개를 펴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 경영진은 발렌시아전 무승부(2대2 무) 이후 다음 날 긴급 이사회를 열어 경질을 결정했다.
후임은 '레전드' 지네딘 지단(44)이었다. '감독'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가 아끼고 아껴온 카드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가 흔들릴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름이었다. 지단은 명실상부한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다. 수많은 스타들이 거쳤던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단연 빛나는 별이다. 2001년 당시 최고였던 7500만유로에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지단은 2006년 은퇴할때까지 유럽챔피언스리그(2001~2002시즌), 프리메라리가(2002~2003시즌), 인터컨티넨탈컵(2002년) 우승 등을 차지했다. 특히 루이스 피구, 데이비드 베컴, 라울, 호나우두 등 세계 최고의 별들과 만든 갈락티코 1기는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기억되고 있다. 지단은 은퇴 후에도 레알 마드리드와 인연을 이어갔다. 기술 고문과 코치 등을 거친 지단은 2014년부터 레알 마드리드 2군인 카스티야 감독에 부임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위기의 순간 결국 지단 카드를 꺼내들었다.
베니테스 감독의 경질이 기정 사실화되며 가장 유력했던 차기 감독은 첼시에서 경질된 조제 무리뉴 감독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12월 전격 경질되며 자유의 몸이 됐다. 2013년 6월 경질을 결정했지만 페레스 회장은 무리뉴 감독의 능력을 여전히 높이 사고 있었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맨유행을 선호했고, 팬들 역시 무리뉴 감독을 원치 않았다. 팬들의 선택은 지단이었다. 지난달 24일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가 한 설문에 따르면 6만4000명 중 53%의 팬들이 레알 마드리드의 차기 사령탑으로 지단을 원했다. 팬들이 원치 않았던 베니테스 감독을 선임하며 문제를 자초했던 레알 마드리드 운영진은 이러한 팬들의 여론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초보 감독' 지단이 보여줄 역량에 모아진다. 지단은 현역시절 엄청난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지도자 변신 후에도 스타일에는 변화가 없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수석코치로 활동할 당시 지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르히오 라모스 등 다루기 힘든 스타들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단의 스타일은 유소년 보다는 성인팀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최근 레알 마드리드의 부진이 실력 보다 정신적 부분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단의 카리스마는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지단과 함께 뛰었던 데이비드 베컴은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에 최적화된 감독"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라는 큰 클럽을 이끌만큼 준비가 됐나'는 질문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각에서는 2군 감독을 거쳐 40대에 1군 지휘봉을 잡고 세계 최고 감독 반열에 오른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의 성공사례를 들어 지단 감독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지단 감독의 올 시즌 카스티야 승률은 46.4%에 불과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2007~2008시즌 테세라 디비시온 우승 당시 기록한 66.67%보다 20%가량 낮다. 바르셀로나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전술적 아이디어가 많았던 과르디올라 감독과 달리 지단은 카스티야에서 단순한 전술과 아들 기용 문제 등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는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클럽이다. 레전드였다고 더 많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칫 유망한 젊은 지도자 후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공했던 선수는 성공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유명한 속설은 과연 지단을 피해갈 수 있을지. 지단이 세계 최고의 클럽 지휘봉을 잡고 팬들의 중심에 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