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이순신 장군이 조선 후기 명포수 천만덕으로 바뀌었다. 짚신을 신고 구식 소총을 들고 지리산을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전작의 장군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가족을 아끼는 한 가장의 모습, 그리고 산군이라 불리는 호랑이와 교감하는 포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연기 내공으로는 물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그러니까 CG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영화잖아요. 당연히 부담은 크고 배우 입장에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어요. 퀄리티가 어느 정도 보장될지 장담도 못하고요."
그래도 선택한 이유는 있다. "이제 어느 정도 기술적인 부분은 뒷받침됐다고 봤어요. 성공하는 것은 대중의 평가지만 우리 자체 내에서는 이정도면 됐다고 판단했거든요. 거기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정말 좋았어요."
배우 최민식에게 작품이란 이제 단순히 관객수보다는 던지는 메시지가 중요한 듯 보인다. 지난 해 이미 1700만 관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락거리로서의 영화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지는 않겠죠. '대호'는 던지는 메시지가 명확했어요. 우리 민족에 대한 의미가 컸죠. 신처럼 모시는 산군님 호랑이의 존재, 우리 민족의 한과 업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옛날에 할머니들이 마당에 정화수 떠놓고 빌었잖아요. 그걸 미신이라고 치부해버릴게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봐야죠. '대호'라는 작품도 그런 것이에요."
게다가 기술은 자꾸 시도를 해야 발전한다는 생각이다.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 발전이 안되겠죠. 까일 때 까이더라도 '반드시 의미있는 작업일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래서 영화가 잘된다면 그것은 100% CG팀의 공이라고 생각해요. 잘되면 김대호 씨(호랑이 캐릭터) 덕이에요.(웃음)"
그래도 푸른 천이나 대역 배우만 보고 연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기할 때는 솔직히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있죠. 그런데 그런 생각만 계속 할거라면 이 영화를 안했어야죠.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빨리 적응하고 즐기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 배우들끼리 호랑이를 '김대호씨'라고 부르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했죠. 호랑이 동선이나 속도 등을 상상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그래도 실제 작품이 돼 나온 것을 보니 어느 정도 만족감이 느껴졌다. "호랑이가 '컥컥'대는 모습이나 경동맥이 뚫렸을 때 모습 같은 건 정말 리얼하더라고요. 촬영할 때 우리가 어떤 자세일까 상상하면서 연기했던 것과 영화에 나오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안도하고 감사했죠."
최민식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이라는 것이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가 돼 버리잖아요. 대우도 받고 돈도 벌고, 그런데 그게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한방에 나가 떨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수련을 해야해요. 그러면서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하죠. 그런데 요즘은 '이건 하면 안돼' '저것도 하면 안돼' 그러면서 어떤 프레임에 자신을 가둬놓는 후배들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모든 것을 조심하는 것을 자기관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그 사람 자체가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잖아요. 후배들에게 '그러지마라'고 많이 말해줘요. 처녀총각들이 연애하고 싶으면 마음 껏하라고요. 자유롭게 떳떳하게 살라고요. 그렇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하니까 정말 힘든 일이죠."
차기작은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다. "이제 상투는 그만 틀어야죠.(웃음) 다음 작품은 현대물이 될 것 같아요."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