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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명불허전의 무대, 뮤지컬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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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3년 만에 돌아온 명불허전의 무대, 뮤지컬 '레미제라블'

만약 '죽기 전에 단 한 편의 뮤지컬만 볼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겠는가?'란 질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레미제라블'이다.

3년 만에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로 돌아온 '레미제라블'은 '명성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1985년 초연된 이 작품의 주제와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미 30년 전에 검증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제작진과 배우들은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서울은 물론 뉴욕과 런던에서 '레미제라블'을 본 사람들은 이제 너무 많다. 휴 잭맨 주연의 영화도 국내에서 600만 명 가까이 들었다. 뭔가 새로움을 더하지 않는다면, '앞선 프로덕션보다 못하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한층 높아진 완성도

극장 안에 들어서면 1층 객석 복도 중간까지 길게 뻗어나온 세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울러 배우들의 등퇴장로를 길게 뻗어나온 세트 양 옆으로 하나씩 더 만들었다. 장면에 따라 무대와 객석 통로를 번갈아 활용하며 한층 유기적으로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도록 꾸몄다.

장면 전환도 좀더 빨라졌다. '레미제라블'은 러닝타임 2시간 40분짜리의 대작이다. 혁명과 전쟁으로 혼돈에 빠져있던 19세기 초 프랑스를 배경으로 주인공 장발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대서사시다. 영국에서 온 연출가 로렌스 코너는 이 웅장한 드라마를 속도감있게 구현해 관객들의 넋을 순식간에 빼놓았다. 이것은 물론 작사가 알랭 부브릴, 작곡가 클로드 미셀 숀버그 콤비의 주옥같은 넘버들이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심장을 압박하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무대와 영상의 조화도 적절했다.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둘러메고 파리의 하수도에서 도망치는 장면, 형사 자베르가 세느강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2012년 경기도 용인에서 봤던 '레미제라블' 초연과 비교해본다면 전체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왜 로렌스 코너를 가장 총애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양준모의 재발견

배우들의 열연 또한 박수갈채를 받을만 하다. 특히 주인공 장발장 역의 양준모는 만개한 기량을 뽐내며 작품의 중심을 꽉 잡고 있다. 성악과 출신답게 쉽지 않은 넘버들을 무난하게 소화하며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특히 2막 후반부에서 대단원의 방점을 찍는, 고음역 중의 고음역대인 '그를 집으로 보내주소서(Bring him home)'를 부를 때 객석은 감동으로 숙연해졌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찼던 젊은 날의 장발장에서는 에너지가 넘쳤고, 감화를 받고 새사람이 된 노년의 장발장에선 숭고함이 묻어나왔다.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의 양준모와 비교한다면 장발장이 훨씬 적역같다.

2012년 초연 당시 혁명을 꿈꾸는 학생 그룹의 리더 앙졸라를 연기했던 김우형은 올해 형사 자베르로 변신해 강렬한 연기와 가창력으로 장발장 역의 양준모와 호흡을 맞췄다. 초연에 이어 다시 에포닌 역을 맡은 박지연이 '나 홀로(On my own)'을 부를 때의 여유는 눈길을 끌었다. 유망 신예로 불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베테랑 배우가 되어 있었다.

▶휴머니즘의 가치

빅톨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은 중심으로 수많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며 전개된다. 하지만 모든 시내와 강이 바다에서 만나듯 이야기들은 한 점에 모인다. 그것은 바로 휴머니즘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위대한 이유는 위고의 정신을 뮤지컬 장르로, 그것도 단 2시간 40분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사실 장발장이 한 일은 소박하다. "당신의 딸 코제트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가련한 여인 판틴과의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형사 자베르의 추적을 피해가며 코젯트를 어엿한 숙녀로 키워낸 것도, 코젯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도와주기 위해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장발장의 삶을 통해 위고는 인간애의 위대함과 진실을 드러낸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전 세계에서 롱런하는 것은 바로 이 위고의 메시지를 머리로 강요하지 않고 음악의 힘을 통해 가슴으로 전달한다는 점에 있다.

장발장이 힘들고 지친 삶을 끝낸 뒤 하늘나라에서 판틴과 재회하고, 이어 자신을 감화시켜준 미리엘 주교와 포옹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