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양복을 입지 않았다. 편안한 평상복 차림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8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송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화두는 '걱정말아요, 한국 축구'였다. 올해 그의 길이 그랬다. 슈틸리케호의 2015년은 대단했다. '참사', '쇼크'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16승3무1패, 호주아시안컵 결승전의 1패는 아쉽지만 그래도 무결점의 질주를 벌였다. 승률 80%, 17경기 무실점,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 209개국 가운데 최소 실점(0.20골) 등 상승곡선은 한 차례도 꺾이지 않았다.
기자간담회장에 들어선 슈틸리케 감독도 여유가 넘쳤다. 그는 "지난해 9월 입국해 10월 1일부로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4개월을 돌이켜보면 딱 생각했던 기대만큼 성과를 거뒀다"며 "선수들이 언제나 의욕적으로 열심히 하려는 자세를 보였고, 훈련장 안팎에서도 좋은 태도를 갖추고 있어 너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그의 이야기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첫 만남이 화제에 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 해 8월 영국 런던에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전한진 국제팀장과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중요했던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솔직함이었다. 두 분이 있는 패를 다 공개했다. '당신만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여러 후보자 중 한 명'이라고 면접을 시작한 것이 중요했다. 또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월드컵 진출, 월드컵 본선 8강 등 구체적인 성적을 보장해달라는 부담감을 주지 않은 것도 중요했다. 두 분이 좋은 인상을 줬고, 한국 축구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용수 위원장의 첫 인상에 대해선 "축구를 했다는 늬앙스의 말을 안했지만 전혀 축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굳이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꼽자면 신장이 작고 힘이 센 것 같아 체조나 태권도 등의 무술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도 1년이 흘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제는 가리지 않고 잘먹고 있지만 처음에 와서 힘든 것은 음식이었다. 처음에는 파주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나를 위한 특별한 식단을 준비했다. 1주일 정도 먹었던 것 같다. 이후 선수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생활할 때 현지의 무엇을 기대하기보다 스스로 적응하려는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외국 생활 경험이 많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서울의 아지터도 소개했다. 이태원이라고 했다. 그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서울에는 주차 문제가 있는데 이태원은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좋은 식당과 좋은 음식이 있고. '바(BAR)'들도 있어 술도 한 잔 할 수 있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맥주와 와인은 물론 '폭탄주'도 즐기는 '애주가'다.
가족 이야기도 처음으로 입에 올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 한 명이 더 있었지만 2008년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다. 그는 "딸은 결혼해 사위와 함께 일하고 있다. 사위는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돼 사돈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딸은 병원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반면 아들은 머리카락 길이가 엉덩이까지 온다. 자유분방하다. 딸보다 아들이 나이가 많지만 솔로다. 아들과 딸의 성격을 비교하면 정반대다. 휴가를 간다면 딸은 일주일 전에 꼼꼼히 가방을 산다. 이에 비해 아들은 떠나기 1시간 전에 짐을 챙긴다. 빼놓고 가는 것이 꼭 1~2개가 있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윈드서핑에 취미가 있었다. 지금은 윈드서핑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내에 대해서는 연애담부터 털어놓았다. "만 18세 때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했는 데, 그 때 부모님이 학업을 꼭 마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곳에서 학업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학교에서 지금의 아내와 만났다. 당시 아내는 내가 축구를 하는지도 몰랐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 1년 전인 22세 때 결혼했다. 아내는 39년 결혼 생활 동안 항상 함께 있었다. 많은 지도자가 기러기 생활을 하지만 아내는 항상 내 곁을 지켰다." 이어 진심 아닌 진심도 이야기해 기자간담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편으로는 축구인인 것이 다행이었다. 39년 가운데 절반은 합숙과 소집으로 집을 비웠다"며 웃었다.
2016년 슈틸리케호는 새로운 무대와 만나게 된다. 한국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G조에서 6전 전승, 23득점-무실점으로 사실상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예선은 내년 8월부터 시작된다. 2차예선과는 차원이 다르다. 2차예선 각 조 1위팀의 면면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A조), 호주(B조), 카타르(C조), 이란(D조), 일본(E조), 태국(F조), 북한(H조)이 1위에 포진해 있다. 내년 5월 30일부터 6월 7일로 이어지는 A매치 주간에는 유럽 강호들과 두 차례 평가전을 추진하고 있다. 유로 2016 본선 진출에 실패한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덴마크 등이 후보다.
슈틸리케 감독은 "올해 보여준 기록들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쉽지 않겠지만 내년에는 더 강팀을 상대해야 한다. 그동안 쌓아놓은 것이 밑바탕이 돼 경기를 해야한다. 누구를 상대하든 올해와 같은 정신력, 철학을 토대로 경기에 임할 것이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은 포기하면 안된다. 해왔던 것을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