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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③] 문근영 "'국민여동생'의 서른살, 이제부터 시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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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13년 전, 하얀 교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던, 깨끗하고 뽀얀 피부를 자랑하던 '만인의 여동생'. 큰 눈망울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지면 전국의 오빠들 역시 함께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국민 여동생' 문근영(28)이 어느덧 서른을 코앞에 둔 여인, 여배우가 됐다.

지난 1999년 영화 '길 위에서'(최재은 감독)를 통해 데뷔해 2000년 KBS2 드라마 '가을동화', 2001년 '명성황후'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문근영. 이후 영화 '장화, 홍련'(03, 김지운 감독) '어린 신부'(04, 김호준 감독) '댄서의 순정'(05, 박영훈 감독) 등을 거치며 '국민 여동생'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귀엽고 청순한 외모와 달리 수준급 연기를 선보인 그는 모두가 사랑하는 여동생 그 자체였다.

그러던 문근영은 2006년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이철하 감독)를 통해 '어른'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 흥행에 실패하면서 다시 '국민 여동생'으로 돌아갔다. 학업을 위해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그는 2008년 SBS '바람의 화원'으로 컴백했고 드디어 성인 배우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언제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국민 여동생'이 아닌 '여배우 문근영'으로 첫 이름을 새길 수 있었던 것.

이후 문근영의 행보는 180도 달라졌다. 본격적인 인생 2막을 연 그는 2009년에만 KBS2 '신데렐라 언니' 연극 '클로져' KBS2 '매리는 외박 중' 등 무려 세 작품을 섭렵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2012년 SBS '청담동 앨리스', 2013년 MBC '불의 여신 정이'까지 쉼 없이 달렸고 마침내 올해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 도현정 극본, 이용석 연출)로 방점을 찍었다.

소녀가 여인으로 변화되는 과정처럼 작품을 고르는 문근영의 눈 또한 깊어지고 풍부해졌다. 특히 주·조연의 경계가 없는 '마을'을 단번에 선택한 그의 단호함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증명한 계기가 됐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방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과거엔 많은 부분을 의식하고 신경 썼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선택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저에 대한 기대치 때문인지 '나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해야 해'라는 압박감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아요. 그 지점이 영화 '사도'(15, 이준익 감독)가 아니었나 싶네요. '사도' 출연을 결심할 때 '내가 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의존해야 하는 거지?'라고 느꼈거든요. 내 기준과 내 판단으로 결정하고 책임도 내가 져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죠. 다행히 이런 제 변화를 응원해주고 칭찬해주셨어요. 단순히 '국민 여동생'으로 탈피가 아닌 방향성을 바꿨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지를 바꾼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문근영의 말처럼 '국민 여동생'이라 부르기엔 이제 너무 커버렸지만 아직도 대중은 그를 국민 여동생으로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는 상황.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나 이제는 한결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싱긋 웃는 문근영이다.

"예전에는 '국민 여동생'이란 타이틀이 부담이었죠. 때론 싫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지키고 싶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갖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행운인 것 같아요. '국민 여동생'으로 완전히 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른 '국민 여동생'이 생겨나는 걸 보고 느낀 점이에요(웃음). 아쉽지 않느냐고요? '여동생'은 아쉽지 않은데 '국민'은 아쉬워요. 앞으로 '국민 여배우' '국민 누나' '국민 이모' 등 '국민'이 붙을 수 있는 배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우 인생 중 전성기, 암흑기를 모두 겪었다고 자신한 문근영. 제대로 된, 성숙한 면모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뜨거워진 것. 흥행 캐릭터, 흥행 작품이 아닌 좀 더 좋은 캐릭터, 좋은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성인이 된 '국민 여동생'은 달라도 달랐다.

"뭐든 하고 싶고 뭐든 만들고 싶어요. 이전에는 '이 역을 해도 될까?' 이것저것 생각하고 따지는 게 많았는데 요즘에는 '뭐든 좋으니 진짜 좋은 연기, 작품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만 해요. 주로 주인공 캐릭터 제안이 많았는데 간혹 시놉시스를 읽으면 서브 캐릭터가 더 끌리는 경우가 있어요. 서브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말해도 '농담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거절 안 해도 된다'며 치부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포기했는데 이제는 마음에 드는 역할이 있으면 계속 부딪혀 보려고요. 악착같이 달려들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이것저것 시도할수록 기회가 생긴다는 걸 배웠어요. 욕심이 가장 많이 샘솟는 지금 그걸 시험해 보고 싶어요."

깨지고 부서지면서 헛헛하게 보냈던 문근영의 20대. 그는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20대의 마지막을 가장 완벽히,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가올 서른 살, 누구보다 찬란한 시작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이제 '국민 여동생'이 아닌 '국민 여배우'로 도약을 예고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보인 문근영보다 더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삶도 자유로울 것 같고 제가 맡게 될 역할이나 작품도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자유롭다는 건 바꿔 말하면 새롭다는 것이기도 하죠. 아직 제 모습의 1도 안 보여줬는걸요(웃음). 가장 빛날 때였던 20대 움츠려 빛날 수 없게 됐지만 이제 태도나 생각도 많이 바뀌었으니 20대에 못 피운 불꽃을 30대에 피울 수 있지 않을까요? 빵빵 터트릴 준비가 됐어요. 적어도 불꽃 하나쯤 터트리지 않을까요? 하하."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