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속구단과 FA 선수들의 협상,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탬퍼링, FA 선수들의 타구단 사전 접촉. 이제 나쁜 규칙 위반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너무도 당연시 되고 있는 야구판의 프로세스가 됐기 때문. 순진하게 정해진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바보' 소리만 듣는다.
현장에서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위 말하는 A급 FA 자원들은 시즌 중부터 각 구단들로부터 '작업'이 들어간다. '우리 구단이 당신한테 관심이 많으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장이 열리면 협상하자' 이런식으로 접근한다. 구단마다 스타일 차이도 있다. 어떤 구단은 아예 시즌 중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을 제시해 선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 반면, 또다른 구단은 시장에서 다른 팀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와중에 슬쩍 발을 담가 액수를 조금 더 불러 선수를 흔드는 방법도 있다. 일찌감치 대어급 선수들과의 계약 준비를 하지 않으면 절대 타구단 협상 개시일부터는 원하는 선수를 붙잡을 수 없다.
FA 자격을 얻은 선수라고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원소속구단에서 50억원을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금액이 많은 돈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무작정 시장에 나갈 수 없다. 만약, 시장에 나갔는데 다른 팀들이 이보다 적은 액수를 제시한다면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나간다. 이게 탬퍼링의 근원이다. '원소속구단 제시액에 얼마를 더 얹어줄테니 시장에 나와라'는 식으로 유혹을 한다. 어떤 선수들은 계약 기간과 금액을 약속받아야 확신을 갖고 시장에 진출한다. 결국 원소속구단과 기간 마지막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다른 팀들로부터 사전 접촉을 통해 더 많은 돈을 약속받지 못할 경우 울며 겨자먹기로 찍는 사례가 많다. 물론, 원소속구단 계약 선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액수는 조금 적어도 원소속팀에 있는 것이 야구 외적 삶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경우 돈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고, 원소속구단이 그 선수를 너무나 잡고싶어 형성된 시장가를 파악해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많은 돈을 안겨주는 사례도 있긴 하다.
이런 탬퍼링이 구단들 입장에서는 자신들 스스로를 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 하다. 아니, 알면서도 선수 욕심에 이성을 상실한 것일 수도 있다. 구단이 예를 들어 한 선수에게 80억원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선수가 OK 사인을 내며 시장에 나왔다. 그런데 도장을 찍으려는데 그 선수가 "다른 구단에서 85억원을 준다고 한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구단은 미칠 노릇. 그렇다고 영입 선상에 올린 선수를 그대로 놓칠 수 없다. 어차피 쓸 돈, 조금 더 써 잡고 보자는 식의 협상이 된다. 이렇게 경쟁구단들이 치킨게임을 벌인다. 결국, 돈싸움에서 항복하는 팀들이 생겨나고 마지막 살아남은 팀이 상상 이상의 액수를 쓰며 선수를 붙잡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다른 문제도 제기된다.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시장에 나오면 무조건 잡겠다는 사인을 보낸다. 그 선수는 그 구단을 믿고 나왔는데, 갑자기 구단의 태도가 돌변해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생각보다 적은 액수를 제시해버리는 일이다. 그러면 그 선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그렇다고 이를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선수 스스로 탬퍼링을 했다고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야구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거품이 빠지는 FA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한다. 굳이 원소속구단 우선 협상 기간을 두며 시장 과열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새로운 FA 선수들은 전년도 선수들 계약금액을 들이밀며 더 많이 받겠다고 한다. 매년 신기록 액수가 경신되고 있다. 야구계 전체가 공멸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