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 수원 감독(45)에게 2015년은 고비였다.
지난해보다 축소된 구단 지원금, 부상 선수 속출, K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병행…. 그러나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비록 무관에 그쳤지만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2위를 차지했다. 성적표는 지난 시즌과 거짓말처럼 똑같았다. 19승10무9패(승점 67). 하지만 같은 성적이라도 올해가 지난해보다 훨씬 힘들었다. "선수들은 박수받을 만하다." 서 감독의 진심이었다. 위기를 꿋꿋이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원팀'이었다.
서 감독이 3년 전 수원 사령탑 부임 이후 꾸준하게 진행해온 '수원병 걷어내기'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이제 수원병은 없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서 감독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흘렀다.
이번 시즌 그야말로 '뭉치면 산다'라는 옛말을 새삼 느낀 서 감독이었다. 선수들 스스로 하나가 됐고 매 경기 직전 선수들과의 하이파이브로 사기를 충전시키는 서 감독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도 수원의 힘이었다.
하지만 새 시즌 더 혹독한 바람이 불 예정이다. 구단 운영비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 감독의 바람은 하나다. 한계점에만 다다르지 않길 원하고 있다. 스포츠조선은 30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원클럽하우스에서 내년 시즌 구상에 돌입한 서 감독과 만나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올 시즌 가장 큰 소득과 아쉬운 점은.
▶아쉬운 점은 스트라이커,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 등 중요 자원들의 이탈로 축이 흔들렸다. 정대세 이적 이후 골을 넣은 스트라이커가 없다. 산토스 염기훈 권창훈 등 미드필더가 골을 넣었다. 기본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우승에 근접할 수 있었다. 오장은과 김은선이 있었다면 그림은 달라졌을 것이다. 부상 선수들이 장기간 이탈하니까 힘들더라. 그래도 힘든 과정 속에서 어린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해줬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즌을 치르면서 위기관리 능력이 더 향상됐을 것 같다.
▶전술 변형으로 위기를 관리했다. (염)기훈의 집중견제를 역이용했다. 기훈에게 볼이 연결되면 2명이 달라붙으니까 (권)창훈이와 산토스를 공간에 투입하는 전략을 펼쳤다. 4-1-4-1 포메이션을 가동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래서 창훈이가 성장한 것이다. 수비할 때는 전방 압박을 주문했다. 상대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어려운 상황은 예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ACL을 나가기 때문에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변화를 줘야 한다. 동계훈련 때 모든 선수들에게 멀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 그런 게 이상하게 맞아 떨어졌다. 솔직히 베스트만 고집했다면 우리는 망했을 것이다. 준비 과정에 실험을 하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원병을 걷어낸 것도 올 시즌 큰 힘이 됐는가.
▶수원병은 없어졌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3년 전에는 신뢰가 와해되고, 어두운 분위기가 있었다. 첫 해는 바꾸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지금은 가족같다. 비시즌 합숙 훈련기간 짝을 지어 발표도 시킨다. 하나가 되고 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 속에서 팀은 끈끈해지더라. 팀을 만드는데 있어서 큰 몫을 했다. 기훈이를 필두로 곽희주 오장은 오범석 김은선 민상기 등 베테랑들이 너무 잘해줬다. 젊은 선수들이 내 팀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후배들을 밥 사먹이고 다독이더라. 이렇게 희생하는 팀에 운도 따른 것 같다.
-선수들이 확실히 달라졌다라는 것은 언제 느꼈나.
▶선수들은 합숙하기 싫어한다. 그런데 스스로 하더라. 최근 포항전과 전북전 이틀 전에 합숙을 했다. 코칭스태프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선수들 전원이 모인다. 이런 것이 변화가 아닌가. 팀 내부에는 미묘한 와해 요소가 있는데 하나가 되는 것을 보면서 '이놈들 참 많이 변했구나'라고 느꼈다.
-내년 40대 최고령 감독이 됐다.
▶기쁘지 않다. (웃음) 이번 시즌 위기의 K리그였는데 40대 감독들이 K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지 않았나. 1년간 재미있었던 경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스토리가 발생했던 것 같다. 내년이 더 기대가 된다.
-선수들에게 화를 안낸다고 들었다.
▶경기에서 지면 누구나 화가 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곱씹는 것이 있다. 내 표정이다. 내가 화를 내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는다. 내가 다 안고 가면서 선수들을 깊은 고랑에 들어가지 않게 끔 해야 한다. 나는 강압적인 지도와 정반대 스타일이다. 선수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정원이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팀이 점점 변해가고 더 좋아질 것이다. 선수들이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 지도 스타일은 길게 갈 수 있다. 강한 것은 일시적이다.
-올해 슈퍼매치 2연패는 아픈 추억이다.
▶슈퍼매치는 꼭 이기고 싶다. 올해 1승1무2패의 성적은 아쉽다. 마지막 경기 때는 정말 참패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3골을 따라갔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졌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데서 우리 선수들이 박수받을 만하다. 물론 아쉬웠던 결과다. 아픔이 있다. 매년 그렇게 되지 않게 분발해야 한다. 아픔 속에서 어린 선수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분명 아플 것이다. 연제민은 상당히 아플 것이다. 자신의 실수로 실점을 했다라는 것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만큼 준비를 더 할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축구에 현재 수원은 얼마큼 도달했는가.
▶처음 감독을 맡았을 때 수비축구를 하기 싫다라고 말했다. 공격수 출신이고 축구는 골로 말을 하는 종목이다. 축구는 수비도 잘해야 하고, 공격도 잘해야 하지만 공격에 대한 부분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공격을 하면서도 차단당했을 때 수비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라고 강조한다. 의식적으로 수비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팀이 바르셀로나다. 바르셀로나는 공격도 대단하지만 수비도 잘한다.
-내년 선수단의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수원은 어떤 그림인가.
▶내년 가장 큰 고비가 될 것 같다. 어떤 방향으로 갈 지 걱정이다. 그것에 따라 내년에는 다시 시작해야 되나라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다. 재창단하는 심정이다. FA 선수들이 많은데 가능하면 같이 갔으면 한다. 그런 방법을 찾으려고 구단과 얘기를 많이 한다. 어린 선수들이 클 수 있는 것은 옆에 좋은 선수가 있어서다. 젊은 선수들만으로 성장하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휴식을 택한 황선홍 감독에게 한 마디 해달라.
▶미안하다. 100승을 못채우게 해서….(웃음) 세월이 빠르다. 엊그제 같이 합숙하고 경기했던 생각이 많이 난다. 이제 지도자로 경기를 하고 선의의 경쟁을 했던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감독이고, 좋은 형이다. 앞으로 좋은 지도자로 승승장구할 것이다. 금방 또 충전하고 들어올 것 같다. 그 때 만나면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화성=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