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33·소프트뱅크)가 예전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39·삼성)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이대호의 역전 결승 투런포 한방에 침묵하던 타선이 벌떡 일어섰다. 꼭 필요한 상황에서 해결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대호가 진정한 '히어로'였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11일 대만 타이베이 타오위안구장에서 벌어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국가대항전 2015 프리미어 12 대회 B조 조별예선 2차전에서 10대1 대승을 거뒀다. 1승1패.
과거 이승엽의 역할을 이대호가 그대로 해주었다. 이승엽은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끝으로 사실상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그는 한국 야구사에 큰 획을 수차례 그었다. 그의 방망이가 한 번 제대로 돌때 마다 대표팀의 메달 색깔이 달라졌다. 15년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동메달, 2006년 WBC에선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금메달을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그런 이승엽에겐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나이가 많은 이승엽은 이제 더이상 대표팀에 없다.
이대호는 이번 국가대항전 '2015 프리미어 12' 대표팀에서 야수 중 최고참이다. 이대호는 지금까지 이승엽이 걸어간 길을 차례대로 잘 밟아 따라갔다. 이승엽이 KBO리그를 홈런으로 지배하고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던 것 처럼 이대호는 KBO리그 최고의 타자가 된 후 일본으로 진출, 올해 재팬시리즈 MVP로 정점을 찍었다. 이대호는 4년간 일본 프로야구에서 A급 활약을 펼쳤다. 한국에 이어 '현미경 야구' 일본에서도 통한다는 걸 입증해 보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대호가 이승엽 보다 홈런에선 뒤지지만 타석에선 더 무서운 면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대호는 일본에서도 굴곡없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리고 최근 메이저리그 도전장을 던졌다.
이대호는 이제 대표팀에서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이승엽과 함께 9전 전승 우승 신화를 썼다. 이대호는 2009년 WBC에서 이승엽 없이 동갑내기 추신수(텍사스) 김태균(한화)과 함께 대표팀 타선을 이끌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이승엽이 없이 금메달을 땄다.
이대호는 이승엽과 마지막으로 함께 출전했던 2013년 WBC에선 첫 경기 네덜란드전에 0대5 완패를 당하면서 예선 1라운드 탈락이라는 고배를 들었다. 그 무대를 끝으로 이승엽은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이제 이대호가 대표팀의 중심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추신수와 김태균도 없다. 이대호 '홀로서기'인 셈이다. 이대호는 후배 김현수 박병호와 클린업트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이승엽은 역대 대표팀에서 4번 보다는 3번 타순에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야구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인상적인 홈런을 많이 쳤다.
이대호는 부동의 4번 타자다. 그는 이미 국가대표로서 기록적인 면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부터 태극마크를 단 후 거의 매번 대표팀에 차출되고 있다. 통산 타율 3할6푼8리(이번 대회 미포함) 6홈런 33타점을 기록했다.
앞으로 이대호는 이승엽 처럼 길게는 나이 30대 후반까지 대표팀 타선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다음 대회는 2017년 3월 열릴 예정인 WBC다. 타이베이(대만)=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