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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차두리 "후회없는 마지막,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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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뉴질랜드와의 A매치는 차두리(35·서울)를 위한 무대였다.

태극마크를 달고 마지막 주장 완장을 찬 그는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전반 42분을 소화했다. 그리고 하프타임에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렀다. 13년 143일, 긴 여행이 막을 내렸다. 차두리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인 아버지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의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경기장을 찾은 3만3000여명이 모두 기립해 '감사의 박수'를 선물했다.

또 한 번의 은퇴 무대가 열렸다. 차두리의 현역 은퇴식이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 열렸다. 2002년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르 레버쿠젠에 둥지를 틀었다. 곧바로 빌레펠트로 임대돼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를 거쳐 2010년부터 두 시즌간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함께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었다. 2012~2013시즌 분데스리가에 컴백했다. 뒤셀도르프로 이적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2012년 연말 계약을 해지했다. 멈출 것 같았던 그의 시간은 K리그와 만나며 다시 돌아갔다. 2013년 3월 서울의 품에 안겼다. 서울 소속으로 114경기에 출전, 2골-7도움(K리그, ACL, FA컵)을 기록했다. 해피엔딩이었다. 2013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 지난해 FA컵 준우승에 이어 지난달 31일 챔피언의 꿈을 이뤘다.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고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챔피언을 경험했다.

해피엔딩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차두리가 은퇴 기자회견이 슈퍼매치 직후 열렸다. 서울은 올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에서 4대3으로 승리했다.

-은퇴 소감은

▶은퇴 기자회견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대표팀에서 마지막이라고 하고 운동장에 나타나서 또 공을 찼다. 하지만 이제 진짜 끝인 것 같다. 경기 후 질문을 받고 인터뷰를 하는 것도 더 이상 없다. 시원섭섭하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마지막이란 것 실감난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도 있지만 다시는 그라운드에 뛸 수 없는 것은 슬프고, 아쉽기도 하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지나간다. 정말 열심히 했고, 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없이 마지막을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홀가분하다.

-자신의 축구 인생 스코어는 3대5 패배로 변함이 없다고 했다. 세 골에 대한 의미는.

▶축구를 하면서 제 기준은 차범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고, 유럽에 나갔을 때는 정말 잘했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축구적인 측면에서 차범근이란 사람 근처에도 못 갔다. 그래서 졌다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월드컵 4강, 월드컵 16강을 경험했다. 아버지 차범근 때문에 분데스리가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있지만 본인이 능력이 안되면 갈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10년간 생활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대표팀과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 생활한 것이 3골 정도는 넣지 않았나라는 생각 내 평가다.

-이천수도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월드컵 세대가 저물어간다.

▶저랑 천수가 당시 막내였다. 막내가 은퇴하는 것을 보면 팀 자체가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뜻이다. (김)병지 형과 (현)영민이 형 뛰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멤버가 한국 축구에 큰 기쁨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사랑도 받았다. 그 때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좋은 일로 돌려주는 것이 2002년 세대가 해야할 일이다. 감독님도 계시고, 다른 일 하는 일을 하는 분도 있다. 나 또한 책임감을 갖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

-차두리 인생 제2막의 꿈과 미래는.

▶아직은 모르겠다. 감독 자격증을 따는 것은 맞다. 세부적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라운드 안팎으로 배울 지식이 많을 것 같다. 배우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맞는지, 유럽에서 좋은 것을 배워서 한국에 도움을 줄 지 생각하고 싶다. 당장 감독이나 행정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싶지 않다. 지금 마음은 그래도 그라운드 가까이에서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감독인데, 쉬운 직업이 아닌 것을 아버지를 통해 일찍 깨닫고 배웠다. 섣불리 쉽게 도전했다가 많은 것을 잃고 잘못될 수 있다. 더 많이 공부해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하고 싶다.

-세 시즌 전 K리그에서 이같은 마지막 그림을 상상했는가.

▶영화같다. 진짜로 난 복 받은 사람이다. 과연 이렇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몇 명이나 나올까. 꿈같은 일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만큼 그동안 공을 잘찼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 서울에 왔을 대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반신반의한 목소리도 있었고, 몇몇 팬들은 차두리가 왜 서울에 왔을까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6개월간 적응에 힘들었다. 서울에 들어오기 전 3개월을 쉬면서 몸이 안 좋은 상태였다. 경기력이 안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때 힘들었다. 바닥에 철썩 주저앉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잘하고 싶었다. 유럽이 아닌 한국 축구 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아버지 도움도 컸다. 많은 조언과 방법도 제시했다. 차츰차츰 바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박수를 받으며 모든 축구 선수들이 꿈꾸는 마무리를 해 행복하다. 처음부터 햇살이 비치는 날씨가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정상의 자리에 섰고, 밝은 빛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았다. 인생을 살면서 단단하게 만들어줬고, 도움을 준 3년이다.

-은퇴를 결정학 결정적적 배경은.

▶진짜 힘들다. 한 번씩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 정말 힘들다(웃음).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크다. 100% 쏟을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좋은 결과가 안 나온다. 아시안컵 이후 어려움을 많이 겪은 것 사실이다. 실망스러운 것도 있었다. 100%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팀에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그만하고 싶었다. 더 이상 100%를 쏟아낼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서울 팬들은 차붐보다 두리가 더 낫다고 한다.

▶서울 팬들에게는 차범근은 적장이라 미웠을 것이다(웃음). 2008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수원이 이겼다. 수원팬들이 나에게 야유보내고, 사랑하지 않는 것에서도 불만이 없다. 아버지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 많은 것 하셨고, 전북이나 수원 등 팀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서울 팬들 사이에서만은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서울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최용수 감독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보낸다. 많은 사람의 박수 뒤에는 최용수 감독님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힘들 때도 등을 두드리며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잘 됐을 때는 네가 잘했다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최용수 감독님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제 편안하게 용수 형이랑 소주 한 잔했으면 좋겠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