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 또 다른 절실함을 누르다.'
SK텔레콤 T1은 창단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2013년 10월, '2013시즌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결승전에서 중국 로열클럽을 꺾고 한국팀 사상 처음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최정상에 올랐다. 다음해 5월 열린 '2014 올스타전'까지 제패한 SKT는 당분간 어느 팀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강으로 꼽혔다. 하지만 국내외를 모두 석권한 SKT의 가장 큰 적은 목표 의식 상실, 그리고 자만이었다. 롤드컵 우승을 일궈냈던 5명의 선수 가운데 '페이커' 이상혁과 '벵기' 배성웅을 제외한 3명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은퇴하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된 것도 한 몫 했다.
'디펜딩 챔피언' SKT는 롤드컵 대표 선발전마저 통과하지 못하며 한국에서 열렸던 '2014시즌 롤드컵'을 관중석에서 바라봐야만 했다. SKT 전성시대는 단 1년여만에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듯 보였다. 올해 국내 첫 리그인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시즌에서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SKT는 이내 전력을 회복,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서머 시즌에서는 18전 17승 1패의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가장 먼저 롤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국내에서 명예를 회복했으니, 이제 해외대회에서 이를 보여줄 일만 남았다.
KOO 타이거즈 역시 창단 직후 처음으로 참가한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시즌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SKT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서머 시즌에서도 3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십 포인트 2위로 롤드컵에 한국 대표 자격을 획득했다. 하지만 KOO는 두번의 대회를 거치는 동안 심한 부침을 겪었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창단됐지만 모기업인 중국 쿠TV가 국내 사업을 접으면서 결국 이번 롤드컵이 KOO 이름으로 뛰는 마지막 대회가 됐다.
상황은 달랐지만 간절함은 똑같았다. 정상에 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아님 팀 해체의 위기 속에서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우승은 두 팀 모두 절실했다. 누가 이겨도 게임명처럼 '레전드'(전설)가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대결, 결국 SKT T1이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렸다.
SKT는 31일(한국시각)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KOO를 3대1로 꺾으며 2년만에 완벽하게 부활했다. 또 역대 롤드컵 사상 처음으로 2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린 역사적인 팀이 됐다. KOO 역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SKT의 전 세트 우승을 막아내며 끝까지 명경기를 연출, 한국 e스포츠의 실력과 매력을 전세계 팬들에게 선사했다. SKT는 이날 우승으로 100만달러(약 11억4000만원)까지 거머쥐었다.
사실 SKT의 압승이 예상됐다. SKT는 16강 예선전부터 시작해 8강과 4강전을 거치며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반면 KOO는 16강 예선에서 대만 플래시 울브즈에 2패를 당하며 2위로 겨우 8강에 올랐고, 8강전에서도 한국 KT롤스터에 첫 세트를 내주고 나머지 3세트를 이기며 4강에 힘들게 올랐다.
이날 경기에서 SKT는 초반 1~2세트를 모두 잡아내며 전 세트 우승의 9부 능선을 넘는 듯 보였다. 1세트에서 KOO는 정글러 이호진을 앞세워 SKT 서포트 '울프' 이재완의 챔피언 쉔을 물리치며 선취점을 올렸다. 하지만 SKT는 톱, 미드, 원딜 3 등 3개 포지션 선수들을 앞세워 기세를 앞서갔다. 톱 라이너 '마린' 장경환이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챔피언 럼블을 잘 키우며 7킬을 올렸고, 원딜 '뱅' 배준식은 트리플 킬을 기록하는 등 무려 9킬을 기록하며 KOO를 압도했다. SKT는 킬 수에서 20-5로 앞설 정도로 완벽한 승리였다.
1세트에서 철저히 장경환에 당했던 KOO는 2세트에 모든 선수들이 합세해 챔피언 럼블 사냥에 나섰다. 초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킬 수에서 4-1까지 앞서갔다. 하지만 SKT는 럼블이 집중적으로 공략을 당하자 유연하게 대처, 상대의 작전을 흔들었다. 특히 세계적인 미드 플레이어인 '페이커' 이상혁은 킬 수에서 4-8로 뒤진 상황에서 '쿠로' 이서행을 솔로 킬로 제압, 기세가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막아냈다. 첫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데 이어 한타 싸움까지 승리하며 열세를 만회했다. KOO가 바론 사냥을 시작했지만 SKT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합세해 이를 빼앗고 드래곤 사냥까지 성공하며 완전히 우세를 잡았다. 38여분의 공방은 SKT의 대 역전극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3세트에서 KOO는 달랐다. 왜 자신들이 SKT의 결승 상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초반 난전에서 무려 5킬을 기록한 KOO는 지속적으로 앞서갔다. SKT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버텨냈지만 초반 열세를 만회할 수 없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에 모인 1만2000여명의 팬들은 "KOO 타이거즈!"를 연호하고 파도타기 응원을 펼치며 약자에 확실히 힘을 보탰다. 이를 바탕으로 KOO는 킬 수에서 29-13의 압도적인 승차로 한 세트를 만회했다.
그러나 결국 승리는 SKT의 몫이었다. 한 세트를 잃은 후 흔들린뻔 했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은 후 4세트 초반부터 '페이커'를 앞세워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킬 수에서 13-1의 압승을 거두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SKT는 우승까지 단 1세트만 패하며 이 부문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써냈다.베를린(독일)=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