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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낙천적으로, 여유롭게" 조정석의 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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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잠시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되짚어보려 한다. '뮤지컬 스타' 조정석이 '전국구 스타'로 거듭나게 된 계기들이 궁금해서다.

2009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그 시작이다. 공연을 인상깊게 본 '모래시계' 송지나 작가가 드라마 '왓츠업'에 조정석을 불렀다. 첫 드라마라 "뭘 몰랐던" 조정석은 여러 작품 동시 출연이 어려운 공연처럼 드라마도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뜻밖에 드라마 편성이 지연되면서 1년간 발이 묶였다. 조정석이 공연을 못하니 뮤지컬 관계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조정석은 "끈기가 좀 있는 편이라 잘 버텼던 것 같다"고 낙천적으로 말한다.

그때가 필모그래피의 유일한 공란. 하지만 물밑에선 더 큰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오디션에 합격했고, 이 영화가 제작 지연되어 생긴 공백기에 '건축학개론' 오디션을 봐서 배역을 따냈다. 때마침 제작사 대표도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의 조정석을 눈여겨본 터였다. 그렇게 그의 '인생 캐릭터' 납득이를 만났다.

그 즈음 송지나 작가와 친한 이재규 감독이 '왓츠업' 촬영장에 갔다가 조정석을 발견했다. 콕 찍어놓고 있다가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 발탁했다. 그리고 '더킹 투하츠' 첫 방송 다음날 '건축학개론'이 개봉했다. 이때가 2012년 3월. 그 이후론 모든 게 달라졌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고, 조정석의 주가는 날로 치솟았다. '최고다 이순신', '관상', '역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오 나의 귀신님'까지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당시엔 저에게 대운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대운이란 단어가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요." 쑥스러운 표정으로 겸손해하는 그이지만, 성실함과 실력, 인품을 모두 갖춘 조정석은 함께 작업한 관계자들이 더 좋아하고 신뢰하는 배우로 소문 났다. 그러니 '탄탄대로'는 그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온 것이리라.

22일 개봉을 앞둔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는 조정석의 진가를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종인 줄 알았던 보도가 희대의 오보였음이 드러나 궁지에 놓인 사회부 기자 허무혁 캐릭터를 중심으로 언론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 영화다. 주연 조정석의 원맨쇼가 상당히 흥미롭다.

시나리오를 받은 다음날 출연 확정. '연애의 온도'로 비범한 감성을 보여준 노덕 감독 연출, '관상'에서 인연을 맺은 한재림 감독 제작,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너무나 재미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개봉을 앞둔 지금 내심 떨린다. "원톱 주연은 처음이라 어깨가 엄청 무거워요.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 이런 상황을 즐기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큰 부담과 책임감을 느껴요." 기자 캐릭터를 연기한 소감을 인터뷰 테이블에서 마주한 기자들에게 얘기하는 것도 "떨리는 일"이다.

극중 허무혁은 세상이 특종으로 알고 있는 오보를 뒷수습하려다 점점 일을 키운다. 급기야 그의 오보대로 실제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며 초조함은 극에 달한다. 한순간의 실수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급기야 마지막 진실까지 덮어버리는 아이러니. 거짓의 늪에 빠진 인물을 진실되게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배우에겐 또 다른 아이러니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유쾌하지만, 저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어요. 상황과 캐릭터에 몰입하면 마치 제가 허무혁이 된 듯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니까, 연기하면서도 미쳐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호흡이 잘게 쪼개지더군요. 묵직한 한방이 아니라 잽을 날리는 것 같은 호흡들이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다행히 그게 허무혁의 초조함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좀 받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습니다."

편집국장 역의 이미숙, 편집국 이사 역의 김의성,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배성우 등 조연 캐릭터의 명품연기가 보태지면서 조정석의 원맨쇼는 더욱 맛깔스러워진다. "이 멤버라면 언제든지 한번 더 뭉쳐서 작업해보고 싶어요." 여기에 감독에 대한 고마움도 덧붙인다. "노덕 감독의 연출은 섬세하면서도 화끈하고 호탕해요. 양날의 검을 다 갖고 있는 실력자라 할 수 있죠."

좋은 작품, 마음 맞는 동료, 실력 있는 감독을 알아본 조정석의 선구안도 칭찬할 만하다. 그는 선구안 대신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일종의 타이밍인 거 같아요. 인연이기도 하고요. 어떤 기회 앞에서 저는 제 감을 믿는 편이에요. 실패도 성공도 제가 짊어져야 할 몫이니까요. 감을 믿은 선택이 운명을 만든 것 같아요. 놓쳐버린 건 원래부터 제 것이 아니었던 거예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진 않았나 걱정스러울 때 말고는 과거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특유의 낙천성은 조정석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미덕이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도 낙천성과 맞닿아 있는 '행복'이다. 행복의 조건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환했고 흥분으로 들떴다. "일단 여유로움이 중요하죠. 쫓기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 허무혁이 잘 보여주지 않나요?(웃음) 여유가 있어야만 삶의 선택지가 많아지죠. 좋아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도 보낼 수 있을 테고요. 그 여유의 조건엔 시간과 돈도 포함이 될 거예요. 제 행복의 그림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조정석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본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 하나를 들려줬다. '세상은 무대다. 그러나 늘 순탄치 않게 펼쳐진다.' "여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너무 평탄하면 금방 지루해할 것도 같아요. 누가 보면 앓는 소리 한다고 할 거예요.(웃음)"

하지만 앓는 소리 할 틈도 없이 당장 19일부터 영화 '형' 촬영을 시작한다. 숨 가쁜 스케줄이다. '오 나의 귀신님' 종영 후 세부로 간 포상휴가가 최근 휴식의 전부. 박보영으로부터 "오빠는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화끈하게 놀았으니, 당분간 그 기억을 삶의 동력으로 삼을 생각이다. "지금은 더 열심히 달려갈 때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주어진 이 일과 시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라 생각하면 행복하게 즐길 수 있어요."

조정석의 유일한 목표는 '다음이 기대되고 궁금한 배우'란 말을 듣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2009년으로 돌아가 그를 되짚었는데도 궁금한 것투성이다. "앞으로도 보여드릴 것이 많을 거라 믿고 싶다"는 조정석의 말을 믿고 기대해보겠다.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