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현실이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명예부회장이 결국 FIFA 윤리위원회의 덫에 걸렸다. 윤리위는 8일(이하 한국시각) 정 회장에게 자격정지 6년과 함께 10만 스위스프랑(약 1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윤리위는 정 회장이 2022년 월드컵 유치전 과정에서 7억7700만달러(약 9184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축구발전을 위해 쓰겠다는 서한을 국제 축구관계자들에게 발송한 데 대해 15년 자격정지(외견상 이익 제공), 윤리위를 비판한 데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4년의 자격정지를 추가로 구형했다. 합치면 19년이다.
그러나 판결은 또 달랐다. 조사 비협조, 윤리적 태도와 같은 애매한 조항을 적용, 6년 자격정지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애초 기대치는 크지 않았다. 조사와 심판국이 윤리위 산하에 있다. 북치고, 장구칠 수 있는 구도다. 그들의 눈밖에 나면 어느 누구도 탈출할 수 없다. 6일 기자회견을 연 정 회장의 표정에서도 이미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은 FIFA 윤리위가 블래터 회장의 '살인청부업자'라고 말한다. 윤리위는 절대 제프 블래터 회장을 공격하지 않는다. 블래터 회장에게 도전하는 사람만 괴롭힌다"고 공격했지만 마지막에는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5개국 축구협회의 추천을 받아야하고, FIFA와도 싸워야 한다. 2개의 전투를 동시에 하는 것이 힘들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현재의 상황이 이어지면 FIFA 회장의 꿈은 허공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이달 26일로 마감되는 FIFA 회장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차기 FIFA 회장선거의 유효성과 공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우려한다"며 "FIFA 윤리위의 악의적 제재를 바로잡기 위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포함한 모든 법적인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다. 또 블래터 회장의 비자-마스터카드 사기 사건, FIFA 집행위의 승인 없이 받은 본인의 연봉 등에 관한 배임 횡령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부당한 제재로 나의 명예를 훼손한 FIFA 윤리위에 대해서도 상응한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흐름이 반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윤리위의 '블래터 무죄, 반 블래터 유죄' 기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모하메드 빈 함맘 전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은 2011년 FIFA 회장 선거에서 블래터 회장의 반대편에 섰다. 그러나 선거도 치르지 못하고 유권자들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며 영구제명을 당했다. CAS가 함맘 회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FIFA 회장 선거는 이미 끝난 뒤였다.
더 경악스러운 형태는 뇌물, 배임, 횡령 등 혐의를 받고 있는 블래터 FIFA 회장,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인 90일간의 자격정지를 함께 선고했다는 것이다. 블래터 회장은 물론 플라니티 회장도 윤리위의 결정에 이의 제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FIFA는 2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임시 집행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안갯속인 FIFA 회장 선거를 논의한다고 한다. 내년 2월 26일로 예정된 FIFA 회장 선거가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더 나아가 블래터와 플라티니 회장에게는 '면죄부'를 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음모론도 무성하다. 정 회장이 블래터와 플라티니 회장의 '희생양'이라는 분석이 있다. '부패 몸통'의 시선을 분산하는 동시에 정 회장의 출마를 원천봉쇄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내년 FIFA 회장 선거에서 과반 득표를 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블래터 회장이 다시 권좌를 거머쥘 수 있다는 우려도 대두되고 있다.
FIFA는 마피아보다 더 부패한 조직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다. "FIFA를 마피아에 비유하는 것은 마피아에 대한 모욕"이라는 평가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추악한 악행은 마침표가 없다. '시한부 회장'인 블래터 회장이 날개가 꺾인 듯했지만 FIFA는 또 한 번 그들을 위한 '신명나는 굿판'을 준비 중인 것 같다.
FIFA 개혁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정 회장은 "국제 사회의 양식을 믿는다"고 했다. 국제 사회에 마지막 남은 양심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FIFA가 '부패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허우적거린다면 자멸 뿐이다. 이성이 지배하는 FIFA를 꿈꾸는 것은 과연 사치일까.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