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의 틈바구니 속에서 빛난 두 명의 K리거가 있었다. 주인공은 홍 철과 권창훈(이상 수원)이었다.
홍 철은 2일 라오스전에서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날 왼쪽 풀백으로 나선 홍 철은 그 누구보다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우측 풀백에 장현수(광저우 부리)가 포진했기 때문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실험이 이뤄졌다.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멀티 능력'을 뽐내던 장현수를 상황에 따라 풀백으로도 활용하고 싶은 슈틸리케 감독의 바람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현수는 어색한 옷을 입은 듯 보였다. 우측 윙어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이 프리롤을 수행하면서 빈 자리를 장현수가 메우긴 했지만, 공격시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기대할 수 없었다. 때문에 경기 초반부터 공격은 오른쪽을 포기하고, 홍 철이 있는 왼쪽 측면에서 주로 이뤄졌다.
홍 철은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빠른 스피드를 적극적으로 살렸다. 극단적인 밀집수비로 나선 라오스 수비진 뒷 공간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홍 철의 움직임은 전반 8분 제대로 통했다. 이청용의 선제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날카로운 돌파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들어가 맞춤형 크로스를 올렸다. 3분 뒤에도 홍 철은 배후 침투로 추가골을 도왔다. 킬패스를 넣어준 정우영과 눈빛이 통했다. 홍 철은 손쉽게 문전으로 땅볼 패스를 연결, 손흥민의 골을 견인했다. 홍 철의 세 번째 도움은 석현준(비토리아FC)의 A매치 데뷔골을 만들었다. 왼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배달했다. 석현준은 발만 갖다대 골망을 흔들 수 있었다. 홍 철은 후반 23분 김진수와 교체됐다.
사실 홍 철은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8월 동아시안컵에서 부상을 안고 귀국했다. 발목이 좋지 않아 지난달 12일 대전전과 지난달 16일 제주 원정 명단에서 빠졌다. 지난달 19일 성남전에서도 교체 명단에는 포함됐지만, 휴식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반 24분 신세계가 예기치 않은 부상을 하면서 할 수 없이 교체투입돼야 했다. 이후 K리그 클래식 2경기를 더 치른 뒤 퉁퉁 부은 발목을 겨우 가라앉힌 채 대표팀에 합류했다.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돋보였다.
홍 철 못지않게 권창훈도 펄펄 날았다. 이날 권창훈은 '산소탱크' 박지성(은퇴)을 연상케 했다. 왕성한 활동량을 폭발시켰다. 높은 골 결정력도 보였다. 2-0으로 앞선 전반 29분이었다. 골문과 23m 떨어진 지점에서 호쾌한 왼발 중거리 슛으로 세 번째 골을 터뜨렸다. 후반에도 또 다시 골맛을 봤다. 5-0으로 앞서던 후반 30분 장현수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왼발을 뻗어 골네트를 갈랐다.
권창훈은 신태용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대표팀 감독이 A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한 뒤 중용된 선수이기도 하다. 올림픽대표팀의 주축멤버로 국제경기 경험을 쌓기 위해 슈틸리케 감독이 출전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데 권창훈은 스스로 굴러들어온 복을 잡았다. 영리한 플레이와 활동량이 많은 선수를 좋아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눈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동아시안컵에서도 3경기를 모두 소화하며 슈틸리케호의 우승을 이끌었다.
소속 팀 수원에선 '승리의 파랑새'로 통한다. 동아시안컵 이후 부상자 속출로 필드 가용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순도높은 골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최근 K리그 클래식 5경기에서 4골을 폭발시켰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애늙은이 같다"며 권창훈이 지닌 풍부한 잠재력에 대해 칭찬한다.
홍 철과 권창훈은 K리그의 자존심이었다.
화성=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