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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과학이다?' 박경수 통해 본 '탈 LG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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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LG 트윈스가 아닌 kt 위즈 박경수의 2015 시즌 성적. 110경기 타율 2할9푼4리 19홈런 57타점 64득점(24일 기준).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고 성적이 2008년 116경기 타율 2할5푼9리 8홈런 43타점이던 선수의 기록이라고 쉽게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 선수가 엄청난 지옥 훈련을 소화한 것도 아니고, 체격이 커진 것도 아니며 폼이 특별히 바뀌지도 않았다. 야구 잘하는 보약을 먹은 것도 아니다. 변화는 딱 하나. LG에서 kt로 팀을 옮겼다는 것 뿐이다.

최근 박경수 때문에 야구계에 장난스럽게 돌던 하나의 이론이 진짜 과학 원리같이 느껴지고 있다. '탈 LG 효과'. 정말 오랜 기간 LG에서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했던 박경수마저 터지자 야구계는 '정말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냐'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탈 LG 효과'는 입단 때부터 유망주 소리를 듣던 선수들이 LG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다른 팀에 가서 대폭발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하나의 정식 야구 용어같이 인식이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고교 시절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장타 유망주가 LG에서는 2군을 전전하다 넥센에서 최고 타자로 변신했다. 여기에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장타 유격수 유망주 박경수가 최근 화려한 홈런쇼로 LG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면밀히 찾아보면 공통의 이유가 있다.

박병호, 박경수, 김상현(kt). 이 효과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공통점은 장타력을 갖춘 유망주였다는 점. 이 선수들이 LG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잠실구장이다. 중앙펜스 125m, 좌-우 100m. 다른 여타 구장들에 비해 중앙펜스가 3~5m정도 더 멀다. 이 길이가 뭐 그리 큰 차이를 만드느냐 할 수 있겠지만 선수들이 체감하는 것은 엄청나다. 선수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잘 알 수있다. 박경수는 "홈구장 위즈파크는 딱 야구하기 좋은 구장이다. 아담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kt 유니폼을 입고 잠실구장에 처음 들어섰는데 '와~ 내가 이렇게 큰 구장에서 어떻게 뛰었었나'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라고 했다. SK 와이번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FA로 당당히 LG맨이 된 이진영. 2005 시즌 인천에서 20홈런을 때려낸 타자였다. 2002 시즌부터 13-17-15-20홈런을 연속해 기록했으니 어느정도 힘을 갖춘 타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LG 이적 후 2009년 14홈런을 기록했고, 이후에는 계속 한자릿수 홈런이다. 2009년은 외야 펜스를 4m 앞당긴 X-존 시절이었다. 대신 타율은 매 시즌 3할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진영은 "나도 SK 때는 나름 홈런 타자라는 인식을 상대 투수들에게 줬다. 그런데 잠실에 와서는 아무리 세게 휘둘러도 넘어가지 않더라. 타자들은 넘어가야 할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혀버리면 이후 몇 타석에 충격이 전해진다. LG에서 뛰다보니 나도 모르게 홈런이 아닌 맞히는 스윙에 집중하게 되더라"라고 설명했다.

최근 만년 유망주 정의윤을 SK로 떠나보낸 양상문 감독은 "의윤이는 못치는 타자가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잠실에 맞는 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의윤이가 살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한 번 트레이드가 돼야했다"고 말했다. 정의윤은 홈런을 쳐야하는 장타자 이미지가 강한데, 그 점을 구단과 팬들에 충족시켜주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4번타자라면 홈런을 때려야 한다'는 야구계 정석이 잠실에서는 통하기 힘든데, LG에서는 이를 고집하니 어떤 선수고 4번에만 가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열렸던 잠실 경기들을 돌이켜보자. 완벽한 레벨 스윙으로, 마음 먹은대로 타구를 퍼올려 홈런을 만든 타자는 거의 없었다. 잠실에서의 홈런은 소위 말하는 제대로 찍힌 타구가 쭉 뻗어 나가야 한다. 찍힌 타구가 나온다는 것은 홈런을 의식한 스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박병호의 사례로 반문할 수도 있다. 박병호가 좁은 목동구장에서 홈런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 비거리는 대부분이 잠실도 넘길 수 있다고 하는 것. 하지만 이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좁은 구장에서 부담 없이 가볍게 돌려 오히려 스윗스팟에 공을 맞히고 비거리가 늘어날 수 있다. 먼 펜스를 바라보며 넘겨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정타가 나오지 않는게 야구다. 박병호, 김상현 등 모두들 힘 하면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다. 힘이 모자라 잠실을 넘기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잠실구장의 펜스가 5m 먼 것보다 마음의 부담 거리가 50m 더 멀었을 것이다.

물론, 잠실구장 외에 LG만의 팀 특성 때문에도 선수들이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고의 인기구단이다. 개인이든, 팀이든 항상 성적이 최우선이다. 구단도, 코칭스태프도, 팬들도 기다려주지 못한다. 박병호도, 김상현도, 박경수도 결국 새 팀에서 '오늘 못해도 빠지지 않는다'라는 공통된 마인드를 품고 고비를 넘었다. 넥센, KIA, kt에서 꾸준한 출전 기회 속에 잠재력을 폭발시킨 케이스다. 박경수는 "이 타석에서 못쳐도 다음 타석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