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7년 만에 동아시안컵 정상에 섰다.
한국은 9일(한국시각) 중국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북한과의 2015년 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한국은 1승2무(승점 5)로 대회를 마쳤다. 이후 열린 중국-일본전 결과에 우승의 향방이 결정됐다. 중국이 이길 경우, 승점 6점(2승1패)으로 중국에게 우승컵을 내주게 됐다. 중국이 비기거나 질 경우, 한국의 우승이었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한국 선수단은 기자석 뒤편에서 중국과 일본의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봤다. 결국 중국과 일본은 1대1로 비겼다. 한국 선수단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한국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개최국 중국은 승점 4점(1승1무1패·골득실 0)으로 북한(승점 4·골득실 -1)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최하위(승점 2)가 됐다.
동아시안컵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03년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중심이 돼 2002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을 창설했다. 이듬해 일본에서 1회 대회가 열렸다. 한국은 2003년 초대 대회와 2008년 중국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3년과 2008년 한국은 승점 7점(2승1무), 5점(1승2무)으로 정상에 올랐다. 2008년의 경우 일본과 승점, 골득실(+1)이 똑같았다. 다득점(한국 5, 일본 3)에서 앞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국은 이번 우승까지 포함해 총 3차례 정상에 서며, 최다우승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회 최우수선수(MVP)에는 '부주장' 장현수(광저우 부리)가 선정됐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장현수는 3경기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캡틴' 김영권(광저우 헝다)은 최우수 수비상을 받았다. 한국전에서 신들린 방어를 보인 '북폰' 리명국(북한)은 최우수 골키퍼상, 2골을 넣은 무토 유키(일본)는 득점왕에 이름을 올렸다.
슈틸리케호는 원없이 실험을 펼쳤다. 그리고 결과는 합격점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생각은 테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슈틸리케호의 시선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예선에 맞춰져 있다. 이미 첫발을 뗐다. 한국은 6월 미얀마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첫 경기를 치렀다. 당시 한국은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 박주호(이상 마인츠) 등 유럽파들이 부상과 기초군사훈련 등으로 제외되며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다. 혹시 모를 유럽파의 부재에 대비해 플랜B가 필요했다. 이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동아시안컵이었다.
최종엔트리부터 파격적이었다. 평균연령 24.2세의 젊은 대표팀이 꾸려졌다. A매치 경험이 없는 선수들만 무려 7명이나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그렇다고 승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1일 중국전에서 보인 심리전이 그랬다. 슈틸리케 감독은 동아시안컵 개막 전까지 "중국은 우승후보"라고 했다. A매치 경험이 없는 선수들을 위한 배려였다. 중국전에서 데뷔전-데뷔골에 성공한 이종호는 "감독님이 경험이 부족한 우리를 위해 중국이 우승후보라고 하셨다고 들었다"고 했다. 전술적으로는 철저한 비공개 훈련으로 중국을 대비했다. 완벽한 경기였다. 모든 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시나리오 대로 였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슈틸리케 감독 역시 고무된 모습이었다. 그는 경기 후 "이런 경기력을 본 적이 없다. 정말 잘 싸웠고 선수들은 칭찬 받을만 하다"고 했다. 이어 대회 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목표를 발표했다. "중국과의 경기 전에 조금 일찍 와서 북한과 일본의 후반전을 봤다. 그 경기를 보고 중국전을 치른 우리의 모습을 본 결과 이번 대회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승을 노래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실험이 자리잡고 있었다. 숙명의 한-일전이라도 상관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일전 베스트11을 두고 선수들과 밀당을 이어갔다. 경기 전날에는 슈틸리케 감독이 "한-일전 명단을 보면 알 것이다. 그 명단을 보면 감독이 전원을 믿는지 일부 선수만 신뢰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발표한 5일 한-일전 베스트11은 중국전과 비교해 무려 8명이나 바뀌었다. 역사 관계 보다 축구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신념이 담긴 베스트11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술이 좋은 일본을 상대로도 점유율 축구를 펼쳤다. 반면 일본은 수비축구를 펼쳤다. 양 국의 축구 스타일이 바뀐 낯선 한-일전이었다. 내용은 압도했지만 결과는 1대1로 끝이 났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한-일전에서도 테스트를 한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에 팬들은 서운할 법도 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그는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공격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확실하다. 90분 전체를 놓고봐도 일본을 앞섰다"고 했다. 동시에 경기 후 라커룸에서는 선수들에게 엄지를 치켜올리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마지막 상대는 북한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상의 카드를 꺼냈다.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홍 철(수원)과 김주영(상하이 상강)을 제외하고 최고의 경기를 펼친 중국전 멤버가 그대로 나왔다. 중국전이 끝나고 공언한대로 슈틸리케 감독 역시 우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선발명단이었다. 하지만 결정력이 발목을 잡았다. 무수히 많은 슈팅을 날렸지만, 득점에 실패했다. 북한과 비기며 자력우승에 실패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동아시안컵에서 펼쳐진 10일간의 실험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대회다.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축구했느냐를 관점으로 보면 좋은 경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며 "우리 선수들의 연령이 낮다.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우리처럼 매경기 적극적이고 이기려고 했던 팀이 없었다. 우리팀 만이 유일하게 이번 대회에서 무패"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한(중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