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낼 수 있는 카드는 전부 쏟아부었다. 보기 드물게 두 팀 모두 '퀵 후크'를 사용하며 '총력전'에 임했다. 양팀 벤치의 '더블 퀵후크'에서는 승리를 향한 의지가 생생히 느껴졌다. 전반기 마지막 3연전에서 마주친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첫 판부터 필승 의지를 앞세운 대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승부의 양끝에 선 상대가 모두 웃을 순 없다. 필연적으로 한쪽은 웃고, 한쪽은 웃는다. 이번에는 한화가 웃었다. 롯데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허무한 주루플레이 실수 2개로 잡을 뻔했던 승리를 날려버렸다. 14일 청주구장에서 한화가 9회말 정근우의 끝내기 안타로 4대3 승리를 거뒀다.
▶퀵 후크 vs 퀵 후크
'퀵 후크'는 선발 투수가 3실점 이하의 선발 투수를 6회 전에 바꾸는 것을 뜻한다. 6회 이전의 3실점 이하는 그리 큰 데미지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선발 투수가 그런대로 자기 임무를 잘 해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투수를 교체하는 건 보통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갑작스러운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투수가 계속 마운드를 지킬 수 없을 때. 다른 하나는 벤치에서 승부처라고 판단해 일부러 빠른 타이밍에 투수를 바꿔 분위기 반전을 노릴 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퀵 후크'에 담긴 뉘앙스는 두 번째 경우를 뜻한다. 벤치가 과감하게 움직여 경기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퀵 후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의 한화가 대표적이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승부처라고 판단되는 순간에 늘 과감한 투수 교체를 감행해 재미를 봤다. 13일까지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총 41번의 '퀵 후크'를 감행했다. 대신 이 방법을 쓰려면 불펜의 힘이 탄탄해야 한다. 강한 불펜이 뒷받침돼야 효과가 있다. 한화는 박정진-윤규진-권 혁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박혁진 트리오'가 뒤를 든든히 받치는 팀이다. 그 덕분에 5할 승률 마진에서 13일까지 +5승을 하면서 5위를 기록했다.
반면 롯데는 KBO리그에서 퀵 후크를 적게 쓰는 팀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13일까지 총 22번의 퀵후크를 사용했다. 10개 구단 중 3번째로 적었다. 한화와는 극과 극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불펜의 힘이 그리 막강하지 않은데다, 기본적으로 레일리-린드블럼-송승준 등 '선발 3인방'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에 초반에 무너지지 않는 한 선발을 길게 끌고 갔다.
하지만 14일 경기에서는 양상이 변했다. 한화는 원래대로 초반부터 빠른 투수 교체로 승부를 이끌어갔는데, 롯데도 마치 한화처럼 빠른 타이밍에 선발을 교체했다. 롯데는 0-0으로 맞선 5회말 1사 2, 3루에서 선발 송승준을 내리고 심수창을 투입했다. 이때까지 송승준은 4⅓이닝 동안 안타 7개를 맞았지만,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롯데 이종운 감독은 송승준이 5회에 연속 2안타를 맞으며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내자 이전과 달리 빠른 교체를 감행했다.
송승준의 구위가 떨어졌다고 판단하기도 했고, 더불어 여기서 더 이상의 연속안타를 맞아 대량실점을 하면 승부가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그래서 한 박자 빨리 심수창을 투입한 것이다. 하지만 심수창의 투입은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심수창은 첫 상대인 정근우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맞아 1점을 내준 뒤 김태균에게 볼넷, 그리고 대타 한상훈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아 2점째를 허용했다. 모두 송승준의 자책점으로 기록됐다. 그러면서 롯데는 0-2로 끌려가게 됐다.
한화의 퀵후크도 롯데와 마찬가지로 크게 재미를 보진 못했다.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탈보트가 6회초 유격수 실책과 안타 2개로 1점을 내주며 2-1로 쫓기자 김성근 감독은 박정진을 투입했다. 무사 1, 3루 상황이었다. 김 감독의 목적은 추가 실점을 막는 데 있었다. 박정진은 그러나 무사 1 3루에서 박종윤에게 내야 땅볼로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송창식이 나와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 이닝을 끝냈다. 어쨌든 동점을 허용한 시점에서 한화의 '퀵후크'도 실패다.
중요한 건 두 팀이 모두 빠른 타이밍에 선발 투수를 바꿔가면서 보여준 승리에 대한 의지였다. 초반부터 상대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블 퀵후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디테일에서 진 롯데
이렇게 초반 서로 퀵후크를 써가며 강력한 승부욕을 보인 두 팀은 경기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롯데가 먼저 승기를 잡는 듯 했다. 2-2로 맞선 7회초 아두치가 솔로 홈런을 터트려 3-2를 만들었다. 그대로 2이닝만 잘 마무리하면 롯데의 승리가 굳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롯데 불펜은 1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곧바로 7회말에 동점을 허용한 것. 정근우의 유격수 쪽 내야안타에 이어 도루와 폭투로 2사 3루가 됐다. 롯데 두 번째 투수 심수창은 결국 여기서 김태균에게 동점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롯데는 여기서 또 한번 강력한 승부수를 던졌다. 선발 요원인 레일리를 중간계투로 투입했다. 경기 전부터 예고됐던 바다. 레일리는 한상훈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잠재웠다. 롯데 벤치의 두 번째 승부수는 성공했다.
그러나 롯데는 이후 맞이한 두 번의 재역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우선 8회초. 무사 1루에서 최준석의 펜스 직격타가 터졌다. 그런데 1루에 있던 손아섭이 3루를 지나쳐 오버런을 하는 바람에 태그 아웃당했다. 3루에서 멈췄더라면 충분히 이후 득점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이 아웃으로 롯데는 귀중한 득점 기회를 놓쳤다.
허무한 주루플레이는 9회에 또나왔다. 1사 후 대타 김주현이 좌전안타를 치고 나간 뒤 대주자 김대륙으로 교체됐다. 그런데 김대륙이 후속 타자 아두치의 좌익수 뜬 공때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했다. 아웃카운트를 착각했는지 2루로 뛰어갔다. 심지어 3루까지 가려고 했다. 한화 야수진은 손쉽게 공을 1루로 송구해 미처 귀루하지 못한 김대륙을 아웃시키며 이닝을 끝낼 수 있었다. 동점으로 팽팽한 경기 막판 승부처에서 도저히 나와서는 안될 행동이었다. 결국 이런 부주의에서 롯데는 지고 말았다.
청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