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선수들에게 김기태 감독이 부임한 후 달라진 점을 물으면 대다수가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말한다. 베테랑 선수에서 저연차 젊은 선수까지 이구동성으로 "자신감을 갖고 편하게, 재미있게 야구를 해보자는 감독님 말씀이 힘이 된다"는 얘기를 한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최근 몇 년 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최희섭(36) 서재응(38)이 명예 회복의 기회를 갖게 됐다. 최근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진 최희섭은 "여러가지 배려를 해주신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했다. 선발 등판한 서재응을 내릴 때 김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 어깨를 다독여 줬는데 "고참에 대한 예우였다"고 했다. 팀 내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입지가 좁아졌던 김원섭(37) 김민우(36)도 인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김원섭은 "안 그러셔도 되는데, 선발에서 빠질 때 감독님이 미안해 하신다"고 했다. 에이스인 양현종(27)은 "감독님이 자부심을 심어주셨다"고 했다.
감독의 신뢰와 배려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불만도 있고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선수도 있겠으나 김 감독의 존재감 자체가 대다수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 듯 하다. 경기 전 훈련 때 김 감독의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얼마나 활발하게 소통을 하는 지 알 게 된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 끊임없이 움직여 선수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울린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것 같지는 않다. KIA는 올시즌 팀 성적을 쫓으면서 리빌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 선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만, KBO리그 다른 어느 팀보다 여러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 외야수 김호령(23) 등 신인급 선수, 포수 이홍구(25) 등 저연차 선수, 내야수 최용규(30) 등 지난해까지 1군에서 보기 어려웠던 선수까지 골고루 엔트리에 포진해 있다. 투수 임준혁(31)을 비롯해 문경찬(23) 홍건희(23) 한승혁(22) 등도 착실하게 팀에 기여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사실 KIA의 리빌딩 작업은 전략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이 닥친 과제다. 세대교체가 분명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현재 KIA를 보면 시험이 닥쳐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밸런스를 신경쓰고 조화를 이뤄가면서 추진하는 모습이다. 1,2군을 오가는 선수가 많고 다양한 형태로 출전 기회가 주어지다보니 정체될 틈이 없어 보인다.
새 감독 체제에서 어느 때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해도 선수 기용에 있어 분명한 기준이 있다. 김 감독은 그동안 여러차례 열심히 준비한 선수, 절실하게 야구에 매달리는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주겠다고 강조했다.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표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다시 대기표를 뽑아서 뒤로 가 줄을 서야 한다."
최근 1군에 합류한 김진우의 보직 얘기가 나왔을 때 한 말이다. FA(자유계약선수)를 앞두고 있는 김진우는 2군 전지훈련 때 다쳐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았다. 개막 후 두달이 넘어 1군에 합류했다. 중간계투로 던지다가 선발 로테이션 진입이 예상되는데, 김 감독은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김 감독은 "부상을 당하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데, 부상없이 몸 관리를 하는 것도 실력이다. 마무리 훈련부터 시작해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심히 한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잘 안 된다고 해도 견디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김진우만 콕 찍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 이면에 냉철한 눈이 자리하고 있다. 이게 프로다.
광주=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