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미국 뉴저지 레드불 아레나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여자축구 평가전이 열렸다.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캐나다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이날, 경기장은 2만 6000여 명의 만원 관중이 운집했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못지 않은 뜨거운 열기였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2위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세계 최강이다. 미국여자대표팀은 5월 중순 '그녀는 믿는다(SHE BELIEVES)'라는 캠페인을 통해, 캐나다여자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결집시켰다. 애비 웜바크, 호프 솔로 등 미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들이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소녀들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켰다. "젊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어느 누구도 '여자'라서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말하게 해선 안돼." "나는 너희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어. 최고의 여자축구선수, 최고의 의사, 최고의 엔지니어, 최고의 과학자… 뭐든지 될 수 있어." 이날 레드불 스타디움 입구에선 '내 꿈은…(My dream is to…)' 이벤트가 펼쳐졌다. 축구를 사랑하는 어린 소녀팬들이 조막만한 손으로 자신의 꿈을 또박또박 적어넣었다. 캐나다여자월드컵은 여자어린이, 여학생, 여자선수, 모두의 축제였다.여자월드컵을 연결고리 삼아 소녀들의 꿈을 응원했다. 여학생 체육과 여자축구대표팀을 하나로 묶어냈다.
▶미국의 양성교육 평등법 '타이틀9' 비포 & 애프터
미국의 여자축구 열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뜨거웠던 것은 아니다. 미국 여자축구의 눈부신 발전은 여학생 체육의 비약적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1972년 6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학교내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만든, 단 37단어로 된 교육 평등법안 '타이틀 나인(Title XI)'은 여학생 체육에 획기적 변혁을 불러왔다. '타이틀나인'은 '미 연방의 재정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활동에 있어, 미국내 있는 사람 누구도 성별을 기준으로 참여를 제한받거나, 헤택이 거절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법안이다. 일반적인 교육평등법이지만, 학교체육 현장에 미친 효과는 즉각적이고도 지대했다. '타이틀 나인' 제정 이전 대학 여자운동선수의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여자운동선수 비율은 7%에 불과했다. 1978년 모든 중등교육기관에서 '타이틀 나인' 준수가 의무화됐다. 남자팀이 있는 학교는 당연히 여자팀도 운영해야 한다. 대학이 남자선수 10명을 선발한다면 여자선수도 10명을 선발해야 한다. 종목 선정, 장비 및 지원품, 경기 및 훈련시간 배정, 코칭 기회, 라커룸 시설 등 모든 항목에서 남녀는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 학교에 대해서는 정부 보조금 지원 혜택이 제한됐다.
'타이틀 나인' 제정 이후 미국 여학생들의 스포츠 참여율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체육 활동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여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주연방 고등학교 연합 자료에 따르면 1971~1972년 여고생 스포츠 참여인구는 29만4015명에 불과했다. 남학생(366만6917명)의 채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법 제정 38년 후인 2010~2011년 무려 317만3549명의 여고생들이 스포츠에 참여했다. '1079% 성장'의 기적을 이뤘다. 남고생 449만4406명과의 격차도 눈에 띄게 줄었다. 배구를 즐기는 여학생수는 1971~1972년 1만7952명에서 2010~2011년 40만9332명으로 22배 증가했다. 축구를 즐기는 여학생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76년 1만 명에서 1980년 90만 명, 1985년 150만명, 2000년엔 270만 명까지 증가했다. 미국에선 여고생 10명 중 4명이 축구를 한다.미국여자대표팀은 FIFA여자월드컵에서 1991년, 1999년 2회 우승했고, 2011년 준우승했다. 올림픽에서는 1996년, 2004년, 2008년, 2012년 4회 우승했다. '세계 최강' 미국 여자축구의 힘은 여학생 체육에서 나온다.
▶'한국형 타이틀나인' 양성평등 체육법안 현주소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학교체육 활성화, 이중에서도 여학생 체육은 국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스포츠 분야의 정책 이슈를 주도해온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법 제정 및 개정 논의도 활발하다. 황우여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여학생 스포츠 활성화에 깊은 관심과 함께 정책적 제도적 노력을 이야기했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김 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 관련 부처 행정가들 역시 스포츠 양성 평등법의 근본 취지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방법론적으로는 제정법보다 신속하게 현장 적용이 가능한 기존 법안의 개정 형식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의원,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준비중이다. 안민석 의원은 2013년 9월, 2014년 3월 2차례에 걸쳐 스포츠 양성평등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해 4월, 학교체육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만들었다.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에 대한 기존 조항이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 위한 법규정은 미비하다고 봤다. 학교체육시설 설치, 학교 스포츠클럽 운영, 여학생 선호 프로그램 운영, 학교체육진흥원 사업 등 여학생 체육활동을 실질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조항들을 명시했다. 안 의원은 지난 4월 한국여성체육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해 '제정법'에 대한 포부도 피력했다. 궁극적으로는 '스포츠 양성평등법'을 제정하는 것이 의미나 파급력에서 보다 확실하다는 것이다. 회기내 법안 통과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여성 스포츠의 권리는 여성들이 주장하고 공감해야 한다. 강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100번 이상 토론회를 거쳐야할 것이다"고 여성 체육인들을 독려했다.
이에리사 의원은 지난해 12월 '스포츠 기본법'을 발의했다. 스포츠가 체육활동의 영역을 넘어 사회문화적 형태로 자리매김하는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맞춰, 스포츠를 '인간답게 살 권리'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다. 스포츠는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인 만큼, 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가 주창했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스포츠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참여하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 즉 '스포츠권'을 법안에 명시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생활체육진흥법 등 '진흥' 개념의 기존 체육법을 아우르는 '포괄적' 기본법이다. '스포츠권'을 통해 양성평등 의무를 명시했다.
프로농구연맹(KBL) 총재 출신이자 두 딸의 아버지인 한선교 의원 역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학교체육진흥법 내에 여학생 활성화에 대한 세부 규정을 명시한 개정법안 발의를 준비중이다. 한 의원은 "여학생 체육 활동 활성화를 골자로 한 학교체육진흥법 일부 개정을 추진하려 한다. 법과 제도의 개선 없이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개정안 초안은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 지원에 필요한 시설, 용품 지원, 여학생이 선호하는 스포츠클럽 비율을 명문화했다. "교육부 장관이 여학생 체육 활성화 기준을 제정해 교육감 및 학교장에게 통보하고, 각 학교장들이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며, 이에 대한 교육부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체육진흥법을 조금 고치면, 현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