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어색한 장면이지만, 낯설지는 않다.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바. 김성근 감독(73)도 이미 그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이 팀이라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화 이글스, 아니 한화 '트랜스포머스'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가 중견수로 변신했다. 종종걸음으로 드넓은 외야를 바쁘게 뛰어다녔다.
정근우의 '변신'은 2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벌어졌다. 한화가 7-3으로 역전에 성공한 8회초 KIA 공격. 2루수로 선발 출전했던 정근우가 중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한화는 7회말 1사 1, 3루 찬스에서 5번타자 송주호를 대타 김태균으로 교체했다. 김태균은 볼넷을 얻어낸 뒤 대주자 권용관으로 다시 바뀌었다. 그러면서 외야수가 부족해졌다. 이미 5번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던 황선일을 5회에 송주호로 바꾼 터라 엔트리에 외야 요원이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결국 김 감독은 '정근우 중견수' 카드를 꺼냈다.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이용규는 우익수로 이동했다.
정근우가 중견수로 경기에 나간 것은 2009년 6월5일 대전 한화전 이후 6년 만이다. 당시에도 선발 2루수로 나왔다가 이날 경기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8회말 수비 때 우익수로 나갔다. 다행히 한화가 승리해 9회말 수비는 하지 않았다.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6년 전 정근우를 우익수로 변신시킨 인물이 바로 김성근 감독이었다. 그 상대는 한화 이글스다. 당시 김 감독은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정근우를 지휘했다. 그런데 6년 만에 한화에서 다시 재회한 두 사제지간이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이 결코 돌발적인 건 아니었다. 이미 김 감독은 전날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전날 KIA전에서 외야수 김경언이 종아리 부상을 당한 이후 김 감독은 팀내 상황이 대단히 격변할 것이라는 점을 짐작했다. 또 이런 위기를 정면돌파하기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26일 밤의 '심야 특타'가 바로 그 준비다. 황선일과 송주호 이성열 권용관 강경학 등이 밤 10시부터 2시간 동안 특타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들이 치는 공을 외야에 나간 정근우가 잡는 훈련을 했다. 김 감독은 이 훈련의 본질에 대해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경언의 이탈이라는 엄청난 위기가 왔는데, 시간을 쪼개서라도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나. 정근우의 중견수 수비 훈련도 그래서 했다. 정근우가 중견수를 맡아줘야 할 상황이 분명히 온다.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이같은 김 감독의 예상은 현실로 이뤄졌다. 타이트한 승부처에서 갖고 있는 전력을 모두 투입하는 것이 김 감독의 스타일이다. 정근우의 외야수 변신 또한 그런 '김성근 야구'의 일환이다.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뒤에 마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6년 만에 외야에 나간 정근우는 "외야로 출장했을 때 내야보다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제 밤에 충분히 연습해서인지 크게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