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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논란' 김성근 감독 "나도 투수 한 명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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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투수 한 명만 쓰고 싶다."

선수도, 감독도 모두 힘이 부친다. 144경기 중 겨우 하나를 치렀을 뿐인데 피로도는 마치 한꺼번에 서너 경기를 한 듯 하다. 요즘의 한화 이글스 야구가 그렇다. 경기 시간은 툭 하면 4시간에 육박한다. 선발 투수는 예사롭게 5회 이전에 강판되고, 불펜 투수들이 총동원되는 일이 많다. 한 경기에 투수가 5~6명씩 출격한다.

다행인 점은 그래도 이런 한화 야구가 지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해서 이긴다.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한다. 중독성 강한 '마약야구'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경기가 주는 피로는 상당하다. 승리의 기쁨으로 피곤함을 잠시 잊을 뿐이다. 이건 한화 김성근 감독도 인정하는 바다.

김 감독에게 물었다. "그렇게 매 경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투수를 적재적소에 바꾸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 그러자 예상 외의 답이 돌아왔다. 김 감독이 말했다. "엄청 스트레스 받지. 피곤하고, 힘든 일이야"라고 했다. 경기를 한번 치르고 나면 온 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 한화 야구와 김 감독에 대한 비판으로 흔히 쓰이는 '혹사'라는 말에 딱히 반박할 게 없다.

그래서 또 물었다. "선수도 그렇고 감독도 왜 그렇게 혹사하시나." 김 감독은 껄껄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 다 살림대로 하는 거지. 나도 솔직히 투수 한 명만 쓰면서 경기 끝내고 싶다. 어떤 감독이든 마찬가지야. 한 경기에 투수는 2~3명만 쓰는 게 베스트지. 그런데 그게 내 팔자에는 없는 거 같아." 특별한 에이스도 없고, 그렇다고 5인 선발 로테이션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지금의 한화 팀 사정으로는 어쩔 수 없이 승부처에서 투수들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투수 교체는 프로야구 감독이 해야하는 여러가지 의사 결정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경험이 없는 감독이 가장 실수를 하기 쉬운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현역 시절 투수 출신이 아니라면 더 어렵다. 그래서 야수 출신 감독 중에서는 투수 교체에 관한 의사 결정을 투수코치에게 일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이뤄지는 투수 교체는 경기 흐름을 극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신중한 일이다. 보통 투수들의 컨디션과 구위, 그리고 경기 흐름과 타자의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체 카드를 꺼낸다. 여기에 감독마다 특유의 승부사 감각이 더해진다. 교체 카드가 잘 맞아 떨어질 때는 감독들도 대단히 큰 성취감을 느낀다. 김 감독도 "물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투수를 잘 바꿔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나도 기쁘다"고 했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 '적절한 타이밍'을 잡기 위해 늘 경기 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라운드를 응시한다. 계속 노트에 메모를 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다.

그렇다면 '투수 한 명이 완투해서 이기는 경기'와 '여러명의 투수가 효율적으로 투입돼 이기는 경기' 중에서 김 감독이 원하는 건 어떤 모델일까. 전자는 사실 감독이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후자는 고민은 많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도 크다. 김 감독의 답변은 이번에도 예상을 빗나갔다. "당연한 거 아냐. 투수 한 명이 알아서 끝내주는 거지." 잦은 투수교체는 김 감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김 감독은 요즘 2군에 있는 투수들을 직접 챙기고 있다. 서산에 있는 선수 대부분을 대전으로 불러들였다. 이유는 직접 눈으로 보고 컨디션과 폼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이런 작업의 목적은 명확하다. '투수를 적게 쓰는 야구'가 김 감독의 목표이기 때문. 그래서 매 경기 승부도 중요하지만, 육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감독은 "요즘 계속 어린 투수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제법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보인다"면서 미래에는 한화 야구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