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가 부쩍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TV시청을 허락한 주말에는 오로지 '스포츠 채널'만 붙잡고 있다. 그의 스포츠 사랑은 축구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TV에서 축구가 사라지자 관심은 야구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고민이 생긴 듯하다. 최근 함께 TV를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아빠는 축구가 좋아, 야구가 좋아?"
지난 주말 외할아버지와 함께 3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인 외할아버지가 불쑥 말문을 열었다. "그 질문은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는 것과 똑같다. 축구는 축구대로, 야구는 야구대로 볼 재미가 있다." 현답이었다. 그제서야 아들도 고개를 끄덕인 후 씩 웃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올린 이동국(36·전북)의 '작심 글'이 화제다. '전파 낭비'라는 비판은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그는 어린이날인 5일 무려 5개 채널이 프로야구 한화 경기를 중복 중계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날 축구보고 싶은 어린이들은 어떡하라고~'라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야구팬도 뿔나고, 축구팬도 뿔났다.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동국은 다음 날 "나는 모든 스포츠를 다 즐기는 편이지만 평소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며 "SNS에 올렸듯이 축구를 보고 싶은 어린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을 소신있게 전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보면서 축구 관계자들도 축구를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접하도록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광고가 문제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고 난 선수로서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동국의 '소신 발언', 분명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현실은 더 암울하다. K리그와 TV 중계, '악연'이다. 전파는 공공재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어느 채널이 됐든 돈에 따라 움직인다. 소위 K리그는 돈이 안된다.
지상파의 경우 K리그 중계시 경기당 2000만~3000만원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프로야구의 경우 약 6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KBS 1TV가 올 시즌 한 달에 두 차례씩 K리그를 중계하고 있다. 그러나 엄연히 말해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다. K리그에서 중계 경기마다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살아보겠다'는 K리그의 마지막 몸부림이 계약으로 연결됐다.
'야구 천국'인 스포츠전문케이블 3사는 또 다르다. 그러나 올 시즌 단 한 차례도 K리그를 중계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중계권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 '돈을 덜 주겠다', '유지해 달라', 평행선이었다. 어린이날 한화 중계에 '올인'한 것도 중계권 때문이다.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K리그 팬들이 기댈 곳은 아니다. 스포츠전문케이블은 야구가 없는 날에만 K리그를 중계한다. 왜일까. 프로야구는 매 회 공수가 교대될 때마다 광고를 할 수 있다. K리그는 가뜩이나 시청률이 저조한 데다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 한계가 있다. 광고 수익은 비교할 수 없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로 돌아온다. K리그는 TV 중계가 확대되면 관심도가 증대될 것이라고 한다. 반면 방송사측은 '논 팔아 장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돈이 되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첨예한 시각 차만 존재할 뿐이다. 현재로선 K리그의 TV 중계는 지름길이 없다. TV가 아닌 다양해진 플랫폼을 통해 K리그를 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K리그 팬들은 4년마다 찾아오는 지구촌 대제전인 월드컵이 거북스럽다. 방송사의 '이중성'에 치를 떤다. 평소에는 외면하다가 월드컵 때만 되면 '축구 사랑'에 목을 맨다. 지상파 3사는 중계권과 제작비에 300억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한다. 흑자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다. '시청률 전쟁'이다.
K리그 팬들사이에선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는 집단행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4년간의 K리그 방송 횟수를 집계해 월드컵 때 '축구의 힘'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를 외면하고는 월드컵을 논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물론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데는 K리그가 가장 먼저 자성해야 한다. 프로축구를 향한 관심이 더 증대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밌어야 한다. 첫째는 경기다. 또 감독은 물론 선수, 구단도 흥행의 첨병이 돼야 한다. 팬이 팬을 모은다는 철학을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이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비단 야구와 축구의 문제가 아니다. '원조 논쟁'만 보자. 돈이 되는 곳에 경쟁하듯 모든 것이 몰린다. 지양해야 한다. '보편적 시청권'은 그들이 필요할 때만 꺼내드는 카드가 아니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