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가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 이런 상상을 해보자.
화제의 SBS 인기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소')가 만약 16부작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얘기를 왜 꺼냈느냐 하면 살짝 아쉬워서다. 30부작 '풍들소'는 현재 4/5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시각 차가 있겠지만 마지막 스퍼트의 숨결이 깔딱고개를 넘듯 살짝 거칠어진듯한 느낌이다. 왜 그럴까. 그동안 '풍들소'는 재미있었다. 근래 보기 드문 독특한 소재와 캐릭터로 시청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시청률만큼 중요한 요즘 드라마의 화제성에서 '풍들소'는 가히 으뜸이었다.
하지만 반짝거리는 신선도는 유사 상황이 반복될 수록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가진 자의 위선 속에 놓인 평범한 서민들. 그 안에 풍자가 있었고, 흥미로운 블랙 코미디가 탄생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상위 1%의 공개된 민낱이 주는 웃음만으로 30부를 꼭꼭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불륜도 등장했고, 급기야 갑을 대립으로 이어졌다. 최근 한정호(유준상) 최연희(유호정) 부부의 갑질은 점입가경이다. 고용된 사람들과 그 편에 선 서민 며느리 서봄(고아성)과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 상속을 무기로 아들 한인상(이준)과 며느리 사이를 갈라 놓기 직전이다. 극 전체의 흐름 상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정도의 쫄깃한 긴장감은 없다. 왜 그럴까. 시청자들은 이미 '풍들소'가 주는 가장 극적이고 재미있는 상황을 맛봤다. 전에 보지 못했던 독특한 설정의 독특한 드라마가 주는 희열. 현재 드라마 공식에 충실한 절정 입문 상황이 어디서 본듯 싱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한민국 상위 1%에 대한 세밀한 취재 없이는 쓸 수 없었던, 그래서 더 공감지수가 높았던 드라마. 최대한 신선함을 유지한 채 아쉽게 끝내기에는 16부 정도가 딱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두배쯤 되는 30부로 끌고 가려다보니 이 드라마의 최대 장점이었던 유니크한 매력이 희석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역시 가장 멋진 여운은 '박수칠 때 떠나는' 순간. '풍들소'는 상대적 기준에서 여전히 재미있는 드라마이자, 나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지평을 연 작품임은 분명하다. 다만, 조금 더 완벽한 마무리에 대한 기대감이 이런 상상을 불렀다. 만약 '풍들소'가 16부작이었다면 시청자는 조금 더 행복해졌을까?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