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K-무비, K-팝에 이어 이제 전 세계가 K-패션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모델은 물론, 디자이너들의 팬덤이 형성되는 등,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껏 들떠있다. 화려함만큼이나 치열함이 공존하고, 창의력만큼이나 지구력도 요하는 세상이 패션계다. 패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스포츠조선은 톱모델 겸 배우 이영진과 마주 앉았다. 2015년 '떡국열차'를 시작으로 또 다른 자신을 내어놓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영진. 그가 더 넓은 세계의 패션인을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두 번째 인터뷰, 모델계 골 때리는 엄친딸 이현이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게 된 이현이, 모델계 엄친딸로 활강하던 그는 예능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저벅저벅 들어와 도도한 표정을 지우고 유쾌한 웃음을 짓는다. 슈퍼모델로 데뷔해 승승장구, 세계 시장에서 활동했고 결혼 이후에는 예능으로 공간을 확장한 이현이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이화여대 경제학도 시절의 스스로를 패션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는 그는 학창시절 추억을 만들고자 참가한 슈퍼모델 선발대회를 계기로 모델로 살게 됐다. 우연처럼 맞아들인 새로운 세상이었으나, 무명 시절 없이 승승장구했고 더 넓은 해외 무대에도 서보았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의 아내로서, 사업가로서, 또 방송인으로서 이현이는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영진(이하 이)-과거의 자신을 패션테러리스트라고 말했던데, 무척 의외였어요.
▶이현이(이하 현):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교복에 체육복, 심지어 코트까지 학교에서 정해준 옷이 있었어요. 사복이 단 한 벌도 없는 시기를 지나 대학에 진학했는데 갑자기 밀어닥친 자유로 패션 아노미가 찾아왔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 초록바지에 빨간 티를 입는 등,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웃음). 친구들은 지금도 그래요. 네가 어떻게 모델을 하냐고.
이-정말 어떻게 모델이 된 거죠?
▶현 :패션잡지를 모델 데뷔하고 볼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니 모델이 될 생각은 하지도 않았죠. 대학 때 연극 무대에도 서봤지만 내게 맞는 옷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 취업할 때가 찾아왔는데, 덜컥 겁이 났죠. '이대로 취직 해버리면 내 인생에 하고 싶은 일은 더 이상 해볼 수도 없고 방학도 없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경험삼아 아니면 추억이라도 만들 겸 모델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방법을 모르니까 포털 사이트에 '모델 되는 법'이라고 검색해보기도 했어요.
이-정말 엄친딸 스타일이네요(웃음). 검색해보니 뭐라고 나오던가요?
▶현 :패션 모델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원비가 꽤 들더라고요. 학생이 돈이 뭐 있겠어요? 그래서 SBS 슈퍼모델대회에 지원하게 됐죠. 붙으면 무료로 교육시켜준다고 하니까(웃음). 그렇게 붙게 됐고 3개월 동안 합숙 훈련을 받게 됐어요. 처음으로 접하게 된 패션, 모델계였죠. 시험 공부하듯 공부했어요.
이-내가 본 이현이의 첫인상은 60~70년대 예민한 여배우 같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사람들이 먼저 내게 이현이를 인지 시켜줬었죠. 일단 나와 닮았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고, 실제로 만났을 때 나도 인정했던 것 같아요.
▶현 :선배님, 영광입니다(웃음).
이-2005년에 데뷔를 했고 2008년부터는 해외로도 나갔네요. 외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나요?
▶현 :생각보다 외롭지는 않았지만, 좌절을 많이 느꼈어요. 사실 모델 데뷔하고 무명 없이 유명 패션지 화보를 찍게 됐었어요. 콧대가 높았죠. 그러다 해외를 나갔는데 현실을 직시하게 됐어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무엇보다 그들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정말 다시 태어나는 것 밖에는 없었죠. 내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회의감을 많이 느꼈어요.
이-내가 본 이현이라는 사람은 자존감이 강해요.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죠. 보통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거기다가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로부터 늘 유쾌하다는 말을 듣곤 하죠. 그런 것들이 결합해 예능에서도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여준다고 봐요.
▶현 : 방송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속사정쌀롱'의 경우 녹화 일정이 기다려질 만큼 즐겁게 했죠. 그 이전에는 모델 이현이로서 패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방송에만 나왔더라면, '속사정쌀롱'은 인간 이현이를 이야기한 첫 프로그램이었어요. 만약 그 시작이 힘든 경험으로 남았다면 방송을 더 할 생각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유쾌한 경험 탓에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이-안정적이라는 분위기도 있어요. 사실 결혼 이후에 더 친해진 터라 결혼이 그런 면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가요?
▶현 : 결혼이 안정감을 주는 것은 100% 맞아요. 그렇지만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 모든 사람이 다 뜯어말렸죠. 사무실에서는 모두가 반대해서 말리고 회유했어요.
이-맞아요. 결혼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이렇게까지 심플할 일인가 싶었죠(웃음).
▶현 : 사람들은 다 정점에 선 순간에 왜 결혼을 해서 커리어를 망치려고 하느냐고 했지만, 저는 모델이 평생 할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100세 시대인데 길게 할 수 없는 일 탓에 결혼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미루고 싶지 않았어요. 활동하면서 내심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고요. 사람이 정상에 있는 순간은 그게 정상인지 모른다고 하잖아요. 한 단계 내려와야 정상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모델로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면서 늘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라며 불안해했죠. 반면에, 사회에 나간 친구들은 회사 다니면서 4대보험에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더라고요.
이-사람들은 언제 결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결혼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선배들이나 동료들을 보면 결혼 이후에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현 : 맞아요. 또한 내 수준에서 이만하면 많이 왔다고도 생각했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패션 테러리스트였는데 해외 무대에도 서보고, 여한이 없었죠(웃음).
이-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라는.
▶현 : 데뷔 초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하면 거창한데 그저 친구들끼리의 아지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어요.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 지금의 가게에요.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죠. 사실 전 공상을 잘 하는 편이고, 남편은 실행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앞으로의 또 다른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 : 모델만큼 재미있는 것이 생기면 열심히 할 것 같아요. 지금 예상하기로는 저의 다음 스텝은 아마도 아기 엄마가 아닐까 싶어요. 올해나 내년쯤 아기를 가지고 싶네요.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